가을의 위로

시간의 문앞에서

2018-09-11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가을 밤, 사람들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계절의 정취를 느끼곤 한다. 밤이 깊어가도록 그 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그 풀벌레 소리가 누군가에는 노래가 되어 훌륭한 세레나데가 되고, 누군가에는 한없이 처량한 울음으로 들리곤 한다. 내게는 후자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집 주변이 온통 식물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보니 자려 누우면 바로 내 머리맡에 와서 소리를 내는 듯 선명하게 들린다.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그 소리는 노래로 위장한 울부짖음이다. 얼마나 크고 강한지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다. 이 밤, 곤충들의 떨림이 내게 고스란히 아픔이 되어 전해져 온다. 날개가 다 해지도록 비비며 내는 그 청량한 소리가 어느 순간 천적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기에 그 소리가 슬프기만 하다. 운명을 건 처절함 앞에 감히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숭고함이다.

조세프 앙투안 투생 디누라르의 《침묵의 기술》을 읽었다. 이제는 제법 가을이라 그런지 밤이 되면 기온이 차게 느껴져 몸도 산득이게 된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꺼내 들은 책이다. 작가는 침묵은 하나의 능력이라고 제시하는 동시에 여러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 중 세 번째 원칙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이었는데도 새삼 곱씹게 되었다. `언제 입을 닫을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며 지낸다. 하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봐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인지 잘하는 것인지 알게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중언부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듣는 사람은 하품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져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진다. 반면 말을 잘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눈과 입을 보게 되고 공감에까지 이르면 친밀감이 높아져 가까운 관계로 이어진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말'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을 모를 것이다. 자신의 말만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을 빼앗게 되어 도리어 자신의 가치가 절하되는 격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을 해야 함에도 침묵만 지키는 것 또한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요즘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을 대하는 방법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재판부의 신뢰성에 부정하며 아예 재판을 포기하고 침묵을 선택한 대통령과, 책임을 주변인들에게 돌리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걸로 보여줘 부정적인 판결의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름에도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대통령.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두 분 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그것은 세월이 흐른 뒤 역사가 판가름해 줄 것이다. 디누아르는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세상에는 지금도 많은 말이 생겨나고 죽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말은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져 대를 이어 살아간다.

이제 겨울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돌담 밑에서 울어대던 풀벌레의 소리도 겨울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말 또한 세월의 계절 속에서 생멸하게 된다. 잊혀가는 말들과 묻힐 수많은 말들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