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다

세상엿보기

2018-09-09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크게 넘어졌다.

온몸, 오른쪽 어깨와 팔다리에 이어 오른쪽 볼이 바닥에 쿵 떨어진다. 순식간이다. 머리에 종이 울리고, 매일 썼던 안전모를 오늘은 왜 안 쓰고 나왔을까 하는 후회가 긴 메아리를 만들며 함께 공명했다.

여느 날 같지 않게 파란 하늘, 몽글몽글한 흰 구름에 좀 들떠 있었다. 귀밑을 스쳐 뒷덜미에 맴도는 바람에 취했었다. 자전거 도로 저만치 앞에 주차된 차를 발견하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인도(人道)로 오르려고 방향만 돌렸다. 그러나 고작 2cm 정도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자전거는 직진하고 나는 붕 날아올랐다.

잠시 후 일어나 쭈그리고 앉아 상처를 살폈다. 하루의 막을 내리며 서서히 세상을 덮는 어스름 속, 더운 바람 알갱이가 상처를 훑고 지나가듯 질주하는 차들의 붉은빛 행렬이 아득하고도 촘촘하게 눈과 귀로 파고들어 온 존재를 때리며 지나갔다. 놀라서 잔뜩 오그라든 번데기처럼 온몸의 혈관이 할딱거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난 빨간 두 발 자전거는 맘에 쏙 들었지만 이후 배움의 과정은 엄청 험난했다. 새로이 닦인 도로의 인적 없는 비탈길에서 페달을 밟지 않고 내려오길 반복했는데 내리막길에서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 균형을 잃었는지 너무 무서워서 스스로 넘어져 버렸는지 데굴데굴 구르기 일쑤였다. 상처에 또 상처가 났다. 그러나 비탈을 오르고 또 오르며 연습하여 드디어 차도를 달리던 첫날, 경적을 길게 울리면서 차를 세운 덤프트럭 운전기사는 높다란 창문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무엇인가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랗게 얼어 있는 꼬마 여자애를 한참 내려다보다 그냥 가버렸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의 자전거가 한 줄로 어둠을 가르며 달렸다. `우리 한 줄'은 내키는 날은 충주를 휘감은 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충주댐으로 하이킹을 하러 간 적도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색색의 별처럼 간들거리던 코스모스와 햇살에 상기된 친구들의 얼굴이 모두 생생하다.

자전거를 다시 타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만 하다가 올여름에야 드디어 실행에 옮겼으니, 근 30년 만에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젊어지고 튼튼해지는 듯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보니 어린아이도 아가씨도 할머니도 자전거를 탄다. 별것도 아닌 것을 뭐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고 머뭇거렸던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가끔 생각나는 말이다. 망설이기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열심히 삶을 살아낸 작가가 죽음을 맞이하며 위트로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 어느 것이 그의 의도였든 `삶의 유한성, 시간의 유한성'을 귀에 쏙 박히게 말해준다.

모든 것에 생동하는 기간은 길지 않다. 팔딱거리던 본능도 시들해지고 푸르던 능력도 퇴색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겠지만, 어느새 두려움과 귀찮음이라는 건조한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는 것은 아쉽기만 하다. 사막화가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다. 사막은 간혹 떨어지는 어떤 씨앗도 싹을 틔우지 못하고 원래 자신인 모래알과 날아온 씨앗을 구별조차 못 한다.

드디어 번데기가 고개를 들었다.

사소한 기회에도 갖가지 생각의 가지를 왕성히 뻗곤 하는 번데기가 상념의 그물을 딛고 자전거에 올랐다. 바람에 쓸리는 상처는 더욱 쓰리다. 나는 번데기를 토닥인다. 다음엔 꼭 안전모를 쓰고 오자고, 달리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잠시 멈추었다 가고, 조심조심 다시 달려보자고.

그런데 자전거 도로에 주차하지 말자고, 누군가에게는 2㎝ 턱도 높다고 어디에 말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