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의 엘레지

타임즈 포럼

2018-09-04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나만이 살며시 지켜보고 싶을 때가 있다. 또 독심술이 있었으면 한다. 도무지 헤아리기 힘든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서다. 좋아하는 이의 마음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풋풋한 젊은 날에는 연인이 대상이었다. 그 즈음에는 사랑을 빌미로 모든 것이 알고 싶다. 언제 일어나고 자는지, 무슨 음악을 듣는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여 그의 하루가 속속들이 궁금하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늘 불안하여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사랑이었으니까.

중년이 된 지금은 노선이 바뀌었다.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대상만 옮겨갔을 뿐 여전하다. 나의 어떤 말도 다 들어주고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두고 싶다. 지인과 친구에게 한 발짝 다가서고 싶어서 드는 생각이다. 이제 지인이 아닌 지음이 되고 싶다.

지음(知音)은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이름이다. 열자의 탕문속의 백아절현에서 나온 말이다. 거문고를 잘 켜는 백아에게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언제나 그의 연주를 칭찬해주고 감탄한다. 백아가 뜻하는 바를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둘도 없는 지기였다. 자신의 연주를 최고라 칭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숴버리고 줄을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서 자기의 연주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누구에게나 지인은 많다. 여러 개의 모임과 동호회의 회원들과 친구나 동료로 넘쳐난다. 그 많은 사람 속에 지음을 두고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마음 끝이 아리다. 쉰의 나이를 넘기고 보니 나를 믿어주는 벗이 절실해진다. 붙임성이 없는 내 탓이다.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가 없더라는 어느 지인의 말이 아프게 와 꽂힌다.

나에게 있어 지음(知音)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지인들의 무리에 숨어 있는 보석을 찾는 일이다. 수많은 모래알 속에서 진주를 캐내는 일이다. 모래알을 품어 살을 파는 아픔을 견딘 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듯 내 안에 지인을 끌어들여야 한다. 둘 사이의 간극을 믿음으로 좁혀내는 시간을 서로 오래도록 죽게 앓아야 한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벗이 없다면 더 나이 들어가면서 외로워 못 견딜 것 같다. 오래전부터 한 사람을 위하여 가시나무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온라인상의 닉네임도 새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슬픈 운명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처절함이 부러웠다. 어쩌면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지음을 꿈꾸는 나에게 가시나무새가 떠올려진 건 그런 까닭에서다.

이 새는 전설의 새로 일생에 단 한 번만 운다.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평생 가시나무를 찾아 헤맨다. 가장 길고 뾰족한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그 가시에 몸을 찌르며 죽어간다. 이때에 세상의 어느 소리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온 세상도 침묵하며 천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아프고 비극적인 사랑에 많이 비유되는 새이다. 어디 사랑뿐이랴. 백아가 분신과도 같은 거문고를 망가뜨린 게 종자기 때문이었다. 우정도 자신의 삶을 포기할 만큼 절절한 관계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지인들로 빽빽한 숲에서 나는 벗을 찾아다니고 있다. 마지막 가시에 찔려가면서 부르는 엘레지. 그리 울어도 기쁠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음(知 音)을 위해 기꺼이 가시나무새가 되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