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최저임금에 끌려다닐건가

충청논단

2018-09-02     권혁두 기자
권혁두

 

목적이 선한 정책이라고 선한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했다가 보류한 여의도·용산 개발사업이 그렇다. 개발한 지 오래된 여의도 주택단지를 방치할 경우 초래될 투기와 난개발을 막자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었다. 지역 간 개발 격차 해소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공개되자마자 부동산시장 요동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화들짝 놀란 박 시장은 사업 보류를 선언했다. 그는 시장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최저임금 역시 밑바닥 노동자들도 사람답게 살게 하자는 정의로운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정책이 마주한 것은 최저임금 수혜자들 못지않게 처지가 절박한 소상공인들의 대규모 반대 시위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동반한다. 사용자의 부담이 늘어 고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은 정착되기까지 치러야 할 과도기적 증상을 견뎌낼 수 있는 수준에서 책정돼야 한다. 역풍에 대비한 완충장치도 인상 폭에 따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최저임금을 놓고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안착으로 가는 과도기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소상공인들의 반발은 상여를 매고 청와대로 향할 정도로 강경하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가져올 노동시장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우선 최저임금으로 직격탄을 맞게 될 영세 자영업자들의 현실 파악에 실패했다. 장기적 불황, 수입을 압도하는 임대료, 카드 수수료, 과도한 프렌차이즈 비용, 골목상권까지 장악하고 착취하는 대기업의 탐욕 등으로 벼랑에 선 절박한 처지를 과소평가했다. 숱한 악재에 허덕이다 탈진한 영세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집단적 분노를 촉발시킨 도화선이 됐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이었다. 일자리 안정자금 같은 지원 대책이 동원되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영세업자들의 반발이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지원책이 효과를 거두거나 반대 목소리가 제풀에 사그러들 것으로 낙관했는지 모르겠다. 기다려달라는 호언장담만 되풀이했을 뿐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는 인색했다. 분위기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지난달 22일에야 부랴부랴 7조원대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때늦은 대응은 이미 속도가 붙은 집단행동에 오히려 탄력을 붙이는 역효과로 작동했다. 소상공인 2만여명이 모인 지난달 28일의 대정부 시위는 최저임금제와 관련한 최악의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을 만난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모든 야당이 집회장을 찾았지만 여당에서는 누구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최저임금 인상 전에 취약층이 파장을 감당할 수 있도록 체력부터 길러줬어야 했다. 그러나 계약갱신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해 대기업 출점 제한법 등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안들은 국회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추풍낙엽이 된 소상공인의 허약 체질에 여당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 사태가 소득주도성장정책 전반이 부정되는 황당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과 재산 양극화가 불가역적 상태로까지 악화됐고 이를 바탕으로 신분 세습까지 고착돼가는 기형적 사회에서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실질적으로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효한 정책의 하나로 선택할 만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가지에 불과한 최저임금에 매몰돼 나무까지 훼손시킬 이유도 시간도 없다. 그것도 경제적 약자들과 대립해가면서 말이다. 광장으로 나선 소상공인들의 항변을 경청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규모와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도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이 궁극의 목표는 아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