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작용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2018-08-30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원격작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이 원격작용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고 하자.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기도의 효과가 지구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라도 즉각적으로 전달된다고 믿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텔레파시와 같은 신비한 힘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이 기도를 듣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섭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이것을 부정한다.

과학은 우주의 모든 현상은 물질적인 것이라고 본다. 아니, 물질적인 것만 과학의 연구대상이다. 따라서 모든 자연현상을 이 물질적인 관계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과학이다. 텔레파시나 하느님은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기도의 효과를 과학에서 다루지 않는다. 단지 심리적인 효과의 하나로 간주한다.

물론 과학자 중에도 신의 존재를 믿고, 우주에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한 작용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의 믿음을 연구 과정에 끼워 넣지는 않는다. 그 믿음이 자기의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논문에 반영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객관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중력이 바로 그것이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이 어떻게 지구를 당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는 공기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진공인데 무슨 방법으로 지구를 끌어당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원격작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실, 뉴턴도 원격작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도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 후에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지구나 태양 주위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공간에 펴져 있는 중력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 장을 통해서 힘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장은 에테르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에테르라는 것은 신의 존재만큼이나 허무맹랑한 개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에테르의 존재를 확신했다. 원격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진공 속에도 힘을 전달하는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무엇'을 에테르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에테르의 존재는 부정되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에 대한 돌파구를 상대론과 양자론에서 찾았다. 상대론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당기는 것은 태양 주위의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간이 휘어진다는 말은 일반인들에게는 원격작용보다 더 이상할지 모른다. 그리고 공간이 왜 휘어야 하는지 과학자들도 알지 못한다. 같은 현상을 양자론에서는 양자장이라는 가상입자의 존재확률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존재확률이라는 것은 고전적인 원격작용보다 더 허무맹랑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원격작용보다 더 심한 원격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격작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과학자들은 원격작용보다 더 허무맹랑한 에테르를 발명했다. 이 에테르의 존재가 부정되자 과학자들은 이 에테르보다 더 허무맹랑한 양자라는 가상입자를 도입했다. 가상입자는 에테르보다 더 이상한 개념이다. 따지고 보면 원격작용을 배제하기 위해서 점점 더 이상한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격작용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되지만 그것은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격작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 또한 `믿음'이 아니던가? 과학은 믿음을 배제하면서 발달해 왔다. 하지만 믿음을 배제하고, 또 배제하고, 끝없이 배제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믿음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