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단상(斷想)

주말논단

2018-08-30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인경리 작은도서관에 `파이데이아 청주지부' 간판을 걸고 `위대한 저서 읽기프로그램'을 시작한지 일 년이 넘었다. 은퇴한 후 집에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것은 3천여 권의 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별다른 책을 읽어보지 못한 나는 중학교 입학 후 학교 도서관에 가보고 충격에 빠졌다. 교실 세 칸 정도를 터서 만든 도서관은 천장높이의 책꽂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고, 책꽂이마다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그 책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이 책들을 다 읽어보리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에 매달리곤 했었다.

그때 처음 읽은 책이 5권으로 된 중국무협소설 `군협지'였다. 한 권이 500여 쪽으로 제법 두꺼웠는데 학교에서 읽는 것으로는 성이 안차서 책을 빌려다가 밤을 새워 읽으면서 무협지의 매력에 푹 빠져 하루에 한 권꼴로 무협소설을 독파해 갔다. 학교 도서관의 무협지를 다 읽은 다음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톨스토이의 `부활'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로망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스탕달의 `적과 흑'같은 작품을 읽을 때는 내가 마치 주인공이된 것처럼 비탄에 빠져 왕성한 식욕을 뿌리치고 때를 거르면서 책을 읽기도 했었다.

그렇게 2년을 책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3학년부터는 입시공부를 한답시고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소설이나 문학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할 때였다.

전공과 관련 없는 언론사를 목표로 공부를 하면서 그때부터 사회과학분야의 책 읽기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런데 돈이 없어 책을 마음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취직을 해서 돈을 벌면 무조건 일정액을 떼어 책을 사리라고 마음먹었었다.

방송국에는 직원들의 주문을 받아 책을 구입해서 배달해주는 책장수가 수시로 들락거렸다. 신문이나 잡지에 신간서적이 나오면 서평을 꼼꼼히 읽고 필요한 책을 주문하면 배달 해주었다. 당시로는 서점에 가지 않고 편리하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그의 장점은 서울 도매상에게 직접 구입해서 가져왔기 때문에 일반서점보다 더 빠르게 신간서적을 배달해 준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책을 받아볼 수 있는 것도 큰 자랑거리였다.

이렇게 모은 책은 이사 때마다 큰 골칫거리였다. 이사짐센터를 부르면 책 때문에 난색을 표하며 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경비를 추가로 지급하면서도 책을 없애지 않았고, 구입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렇게 책이 늘다보니 우리 집 거실에는 안락의자가 놓여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제일 큰 공간인 거실은 책꽂이로 둘러싸였고 중앙에는 테이블을 놓아 남들에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모은 책 덕분에 지금은 작은 도서관을 열고,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언제 어떻게 이 책들을 써먹을까하고 고심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됐다.

어린 날, 도서관을 보고 첫 눈에 빠져 - 책이었는지 도서관의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처럼, 청소년들이 이 도서관에 와서 책에 대한 영감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내가 어린 시절에 그 도서관 영향을 받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노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