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이라더니

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2018-08-30     권진원 진천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권진원

 

“또 하나의 가족(옛 삼성전자의 광고 캠페인)”이라더니

“황유미, 이숙*, 황민*, 김경*, 박지*, 한혜*,…”

몇 년 전 미사 시간에 설교를 시작하며 대뜸 사람들의 이름을 무심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듣고 있던 신자들은 누구야 하며 수군수군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명 남짓의 이름을 부른 후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1분여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말을 이어갔습니다.

“여러분 제가 불러 드린 이름이 혹시 누구신지 아시나요?” 서로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한 분이 혹 새로운 가톨릭 순교자나 성인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힌트를 달라고 하기에 저는 “반올림”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디선가 조용한 목소리로 “백혈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 맞습니다.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급성백혈병과 악성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로 돌아가시거나 투병 중에 있는 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보다 몇 배 많은 분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故 황유미씨는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 기흥공장에서 1년 반 정도 반도체를 세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살이 되던 2005년 6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작업 라인에서 일하던 故 이숙영씨는 서른살이던 2006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바로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미씨가 떠난 그해 11월 삼성 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및 노동기본권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고 후에 `반올림'이라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성과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7년 싸움으로 2014년 유미씨와 다른 한 명은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타의 다른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해 말 반올림과 가족대책위는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에 나서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7월 조정권고안이 제출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조정안을 거부하고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개별보상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이에 반올림은 2015년 10월부터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24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삼성과의 투쟁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합의서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수많은 언론은 이들의 싸움을 두고 `공룡과의 전쟁이다” “계란으로 바위치다.” 라며 불가능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1000일이 넘은 천막농성, 강남역 8번 출구에서의 시간은 이들을 지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하고도 튼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삼성의 전향적 태도로 조정위 중재안을 적극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자들의 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故 황유미씨의 아버지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공동대표인 황상기씨가 예전 인터뷰에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딸을 설악산 흔들바위 근처에 묻어주었노라고 그리고 국화꽃을 들고 딸에게 찾아가 반도체 공장에 있으면서 화학약품 라인에서 일하며 매일 냄새와 악취와 가스에 노출되어 시원한 공기 제대로 마셔보지 못했으니 이제 죽어서라고 맑은 공기 마시길 바란다는 말이었습니다.

떠난 딸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간절함을 담아 부디 좋은 곳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