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웃음을 짓다가

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2018-08-23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어느 유명 배우가 진행하는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듣는데,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시를 얘기하더군요. 시를 찾아보니 이러했어요.

`유월의 제주/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저에게 바짝 다가오세요//혼자 살면서 저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제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말해주고 싶어요//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발전에 끝이 없죠//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저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저는 세 군 데서 호흡을 멈추었답니다.

수국의 즙 같은 말투란 무엇일까, 혼자 살면 자신에 대해 빼곡히 알게 되는 이점도 있겠구나,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도 많이 웃으며 살고 싶구나 하는 식의 생각이 들어서죠.

시를 지은 이원하 시인이 실상 술이 약하지 않다는 진행자의 말에 헛웃음을 짓다가, 문득 시간이 잘 만든 바퀴처럼 힘차게 잘도 굴러간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거미줄도 없는 허공에 눈길을 줄 때가 아직도 많군요. 마음공부의 끝은 어디일까요? 몇 년 전 같은 달에 남겨진 일기 같은 제 메모가 머리를 툭 치고 도망갑니다.

“마음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돌 하나만 날아와도 마음의 호수엔 파문이 일고,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정민 교수가 “김매지 않은 마음 밭의 뒤뜰에 쑥대만 무성하다”고 했는데, 딱히 변명할 것도 없군요. 바이블의 욥기를 원용하자면, “부디, 내 마음이 내 생애를 비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리도 흔들리며 살다간 우주 안에서 즐기며 노닌다는 희환(戱 )의 쾌적함은 누릴 수 없겠네요. 어쩌죠?”

“팔만대장경의 모든 글자를 합치면, 마음 `심(心)'자 하나”라는 말이 왜 그리도 절절하게 다가오는지 조금은 알 듯합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중엔 “나의 마음을 깨끗이 하여 당신을 받아들이니”라는 노래도 들어 있더군요.

이제 가마솥 같았던 염천의 시절도 거짓말처럼 지나갔으니, 아침과 저녁이면 찾아오는 시원한 바람에 정결하게 씻고 싶어요. 줄곧 미혹 당하는 제 마음을.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