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우물이 그리운 날

生의 한가운데

2018-08-21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앞뒤 베란다 문만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와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했던 아파트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올여름엔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봐도 소용이 없다. 찬물로 몸을 씻어 보아도 씻은 듯 만 듯 곧 몸은 더워져 땀이 흘렀다. 만나는 사람마다 폭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오십 년 전쯤 그때가 그리운 요즘이다. 들에서 일하시다 오신 어머니는 가족들의 점심상을 차리시기에 분주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두 되들이 노란 주전자를 손에 쥐여 주시고 “얼른 가서 우물물 한 주전자 길어 오거라” 하셨다. 대문을 나와 채마 밭 옆으로 탱자나무를 지나 조금만 가면 마을 공동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넣어 서툰 솜씨로 물을 길어 주전자에 담아 집으로 오다 보면, 주전자 밖에는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혔다. 동생들은 `주전자가 땀을 흘린다.'며 신기해했다. 그만큼 우물물은 시원해서 일하시느라 땀을 많이 흘리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물을 드시며 “아! 시원하다”하시며 갈증을 해소 하셨다. 오이냉국을 타서 먹고 찬밥 그릇에 시원한 물을 부어 된장에 풋고추 몇 개면 밥 한 그릇은 뚝딱 할 수 있었다. 때론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고 시원한 냉콩국수를 즐길 수 있었다.

가뭄이 심해도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십여 호 되는 마을이었지만 그때는 어느 집이나 식구들이 많았을 뿐더러 외양간에 일소 한 마리는 기본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식수 및 생활용수를 책임지는 우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샤워시설이 없는 때라 아이들은 더우면 개울가로 달려가지만, 어른들은 종종 우물물을 길어다 집에서 등목하셨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등목하시며 차가운 우물물에 몸서리치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마을 어른들은 우물을 소중히 여겼다. 해마다 정월이면 어느 하루, 우물에 금줄이 쳐진 날이 있었다. 마을에 액운을 막고 복을 비는 서낭제를 지내는 날 우물에도 고사를 지냈다. 신성하게 여기는 우물에 잡균을 막고 깨끗하게 하여 그 물로 제수를 장만하고자 정(淨)하게 여겼으리라. 또한, 극한 가뭄에도 물길이 마르지 않기를 염원하며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농사의 풍년과 길한 일들을 함께 기원하지 않았나 싶다.

우물가는 소통의 장소였다. 끼니때가 다가오면 동네 아낙들은 하나 둘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언제나 그곳에는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집집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어느 집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몸져누우셨다는 이야기, 누구네 집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도 우물가 여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우물가는 때론 물물교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남새밭에 푸성귀나 울타리에 애호박을 서로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누던 곳이다.

이젠 그런 우물도 우리 곁에 없지만, 시원한 우물물로 더위를 식히기엔 우리는 모두 너무 많은 물질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다. 선풍기만 있어도 더위 걱정 없을 것 같던 시절도 옛일이 되었으며 올여름, 가마솥 같은 더위는 열대야로 잠을 이루기 힘들만큼 지구의 기온을 우리가 높여놓았다. 시원하던 우물물이 그리운 이즈음, 자연환경을 아끼고 보존하여 지구온난화가 조금이라도 늦춰지도록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