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 비상

2018-08-20     이재경 기자
이재경

 

외국의 한 유명 IT그룹의 인재 선발 담당자가 한국에 유능한 인재가 많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타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택시가 도착한 곳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많은 서울 노량진의 고시촌이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안정 추구형' 구직 인식을 잘 비꼬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다.

엊그제 치러진 국가직 7급 공채 시험의 경쟁률이 47.6대 1을 기록했다. 770명을 뽑는데 무려 3만6662명이 지원했다. 이중 2만5990명이 응시해 최종 응시율이 최근 4년 새 처음으로 70%대에 달했다. 2015년 56.6%, 2016년 56.9%, 2017년 56.1%에 불과했던 응시율이 이처럼 큰 폭으로 오른 것은 그만큼 공무원 취업을 갈망하는 열기가 뜨거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별도의 `고시촌'이 형성되는 기현상은 사실 선진국 대열에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 같다. 오로지 거의 100% 필기시험에 의한 평가만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시촌의 효시는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옛 신림9동 일대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하면서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젊은이들이 모여 형성됐다. 그 이전에 고시 준비를 했던 학생들이 공부할 장소로 찾던 곳은 주로 사찰이나 사찰 주변의 하숙방이었다. 주변의 소음으로 공부에 방해를 받지 않는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에 고시생들이 가장 선호했다. `절간에서 판사, 장관 나온다'는 말을 1970년대까지 흔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제도의 변화와 함께 정보 교류가 필요해지고 외국의 `스터디 그룹' 문화가 자연스럽게 대학가에 유입되면서 고시촌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신림동보다 뒤늦게 형성된 노량진 고시촌은 1990년대 들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의 대입전문 학원들이 이주하면서 처음엔 대입 재수생들이 몰렸던 곳이나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으로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스럽게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대입 시험 문제나 공무원 시험 문제나 별다를 게 없다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현실도 노량진이 고시촌이 되는 데 한몫을 했다.

지난 주말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청년 고용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자료가 발표되자 당·정·청이 긴급 회동을 했다. 이튿날인 20일엔 대통령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결과에 직을 걸고 임하라”는 일갈도 나왔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모르지만, 고용의 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100년 미래를 책임질 IT·과학 분야에 도전하는 인재를 품지 못하면서 `영재 공무원'만 양산하는 지금의 고용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벤처기업가나 과학자보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수많은 젊은이들. 엊그제, 중국과의 IT 분야의 기술수준 격차가 과거 10년에서 최근 1년 이내로 좁혀졌다는 뉴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