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면 족한가?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2018-08-09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세상에 있는 물질은 참 다양하다. 빨간 것, 파란 것, 단단한 것, 물렁물렁한 것, 까칠까칠한 것, 부드러운 것 등 그 다양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 모든 다양한 물질들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원자들이 있어야 할까?

간단히 생각하면 물질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원자가 있으면 된다. 빨간 건 빨간 원자, 노란 건 노란 원자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자연이 아무리 복잡해도 본질은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물질이 다양하다고 그만큼 다양한 원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재료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같은 벽돌로도 오두막집을 지을 수도 있고 큰 빌딩을 지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 다양한 물질들이 있다고 해서 원자들도 그만큼 다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은 분자들이지 원자가 아니다. 원자들이 결합해 어떤 분자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 물질이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 마시는 물(H2O)이 되기도 하고 같은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 소독용 과산화수소(H2O2)가 되기도 한다. 적은 수의 원자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분자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의 다양성만큼 많은 원자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다. 빨갛고, 파랗고, 단단하고, 물렁물렁한 이 모든 성질들은 그것을 만드는 원자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원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같은 원자라도 어떻게 배열해 어떤 구조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자연에는 대략 90여 종의 원소가 존재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무한에 가까운 자연의 다양성이 단지 90여 종의 원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하지만 과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왜 이렇게 원자의 종류가 많아야 한단 말인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 한 가지 원자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산소원자(O)로 사람에게 필수적인 산소(O2) 기체를 만들 수도 있고 같은 산소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오존(O3)을 만들 수도 있다. 같은 탄소 원자로 흑연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가지 원자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물질을 만들 수 있는데 왜 자연에는 90여 종이나 되는 원자가 존재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현대 과학자들이 가진 큰 의문이었다.

데모크리토스가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고 했을 때 원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입자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는 이 궁극적인 입자인 원자는 한 종류 뿐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원자가 데모크리토스가 생각한 그 원자는 아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원자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모든 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 이렇게 3종류의 입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세상 만물은 90여 종의 원자로 되어 있지만 이 원자들은 결국 3종의 입자로 되어 있다니 말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3종이 많다고? 그렇다. 궁극적으로는 한 종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한 개 뿐인 근본적인 입자를 찾기 위해서 원자핵을 더 쪼개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개가 아니라 수많은 소립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격이 되어 버렸다. 혹 때려다 혹 붙인 격이 되었다. 지금은 양성자,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도 쿼크라는 더 근본적인 입자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쿼크에도 다양한 쿼크가 존재한다. 업쿼크, 다운쿼크, 빨간 쿼크, 노란 쿼크 등 다양하다. 그래서 쿼크도 궁극적인 입자는 아닐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 과학자들은 데모크리토스가 주창한 그 원자, 더 이상 나눌내야 나눌 수 없는 원자, 우주의 본질인 그 원자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그 원자를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