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 6

낮은자의 목소리

2018-08-02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무각

 

獨有一物常獨露(독유일물상독로) 한 물건이 있어 항상 홀로 드러나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네.

還會得 湛然這 一物麽(환회득 담연저 일물마)

맑고도 고요한 이 한 물건을 그대는 과연 알고 있는가?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하안거 결재기간동안 저도 결재중 소임 중이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촌각을 다투어 수행정진 중에 있는데요.

이 시간에는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에서 무문 선사의 게송(偈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대하여 무문 선사는 송하기를

`拘子佛性(구자불성)

개의 불성이여

全提正令(전제정령)

온통 제시한 정령(正令)이라

涉有無(재섭유무)

조금이라도 있다 없다는 것에 머무르게 된다면

喪身失命(상신실명)

`목숨까지 잃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조주구자에서 조주스님은 무(無)로써 대답하고 있는바, 이 무(無)야 말로 `있다 없다'하는 유무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무(絶對無)인 것이지요.

즉 무자(無字)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역설하였듯이 한국 선문의 제1 화두는 조주무자라고 하는 개에게도 왜 불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어째서 조주선사는 초지일관 無라고 대답하셨느냐는 건데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 `모든 것에는 불성이 살아있다'하여, 이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붓다의 가르침인데 어째서 무(無)라고 하였을까요?

이는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진리 그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깨우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리의 형상을 코앞에 두고도 엉뚱하게도 강이나 산을 보고 있다는 말이지요.

즉 상대적인 유무의 대립(有無 對立)이 아니고 이는 있음과 없음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무(絶對無)를 경험하고 찾아야 비로소 저절로 풀리는 것이 이 화두인 겁니다.

절대무(絶對無)인 공(空)을 혹은 무(無)라 표현하는 이 경지를 알게 된다면 저절로 연기(緣起)에 의해 있음과 없음의 문제도 풀리게 되는 말입니다.

마치 물이 얼어 얼음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불성의 있음과 불성 없음 역시 똑같은 공으로서 하나인 것이지요.

머리로만 지견을 내어 깨닫는 것은 가짜 해탈이고 온몸과 마음으로 깨달아야만 진짜 해탈이 된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간에도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고 하는 노래가 있듯이 거죽으로는 근사한 장부처럼 보일지라도 그 마음을 도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오늘은 무문관 제 1칙 조주구자(趙州狗子)의 게송 탁마하였습니다.

어때요 자유롭고 멋진 길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2칙 백장야호를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