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경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2018-07-16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이는 추운 겨울 나기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화두이다.

김태봉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간다거나, 부채나 선풍기 에어컨 등으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서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찬물에 담근 수박 같은 과일을 먹어 더위를 삭히기도 한다.

이런저런 계책으로 더위를 이기려 들지만 이내 지치고 마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 주목해야 할 것이 마음가짐이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더위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조선(朝鮮)의 시인 기대승(奇大升)은 여름 풍경을 요모조모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여름 풍경(夏景)

蒲席筠床隨意臥(포석균상수의와) 부들방석 대나무 평상에 누우니
虛櫺疎箔度微風(허령소박도미풍) 빈창과 성긴 발로 미풍이 불어 든다
團圓更有生凉手(단원갱유생량수) 둥근 부채질에 다시 서늘해지니
頓覺炎蒸一夜空(돈각염증일야공) 찌는 듯한 더위가 밤 내내 없어졌네


여름이 더운 것을 탓해 본들 아무 소용도 없고 도리어 더 힘들기만 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이 경우를 두고 한 말이리라.

시인도 여름 더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이 말을 얼마나 되뇌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더위를 탓할 마음은 전혀 없는 듯하다. 지난여름 뒤로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부들방석이며 더워지면 쓰려고 만들어 놀리고 있었던 대나무 평상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마냥 좋기만 하다. 부들이나 대나무는 사람의 몸에 닿으면 차가운 느낌을 주는 물성을 지니고 있으니, 더위에 지친 몸을 맡기는 데 이만한 게 또 있을까? 부들방석을 대나무 평상에 깔고 거기에 맨살이 닿았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은 여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란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름에만 반가운 손님도 있다. 이 손님을 오게 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그저 창을 텅 비게 해 놓고, 방문을 열어 그 자리에 성긴 발을 쳐 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시원함이라는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손님, 곧 바람이 찾아오곤 하는데,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둥근 부채를 부쳐 시원한 바람을 만드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맨살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는 즐거움과 시원함을 날라주는 바람의 반가움 그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질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더위이니 시인이 아니더라도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