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의 여행

타임즈 포럼

2018-07-10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윤희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10㎞'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책의 첫 줄을 읽는 순간 나의 마음은 벌써 무진으로 향해 있었다. 김승옥의 책 「무진기행」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안개로 뒤덮인 고향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책 속의 주인공 윤희중은 타락의 가치가 하락하고 허무와 절망을 상징하는 서울을 떠나 무진(고향)을 찾았다. 그에게 무진은 특별하다. 그리움, 향수를 찾아간 고향이지만 그곳은 참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는 아픔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모처럼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버스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아 뭔가 어색하다. 그러나 버스의 좌석에 앉는 순간 나는 내의식의 방임상태로 되어 버렸다.

나에게 버스로의 여행은 특별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찾아왔다. 시선이 창밖을 향하면 나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버스는 대중교통의 의미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게 시간을 부여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버스를 타지만 나는 버스여행을 떠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버스를 타면 기도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종교적인 의식이라기보다는 참회의 기도랄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그동안 살면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루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평균 13명이라는 보도가 나와도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다가 버스를 타는 순간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딘가를 갈 때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한 나는 모든 것이 늘 버거웠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해도 늘 따라가기 힘들고 뒷북만 치는 격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젊은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요즘 같이 모든 일이 힘겨울 때는 특히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운전을 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버스를 타는 순간 긴장의 끈을 놓게 되어 편안함 마저 들었다.

버스라는 공간은 혼자가 아닌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타인들 속에 섞여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장소의 이동으로 마음이 달라지고 느낌이 새로워진다. 차창 밖을 보면 그동안 놓치고 지나간 일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래서 더욱 나에게 버스라는 공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나에게 바쁜 일상에서 일탈로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낯선 도시를 거닌다. 꼭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낯선 도시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 싶다. 그래서 여행은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중요하지 않다.

오늘도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