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2018-07-04     연지민 기자

 

임 승 빈

토란 줄기 한 허리쯤을
달팽이 한 마리 느릿느릿 기어오른다
느릿한 달팽이의 길이다 토란 줄기
수직의 길이다
아무도 지나는 이 없는 길이 길도 아닌 채
유월 한낮을 널브러져 있는데
토란 잎 위엔 다시 저 먼 하늘이다
달팽이 수직의 길이
저만큼 하늘에 닿아 있다
그 하늘 넘치고 있다


# 태양이 내리쬐는 거리는 더위로 나른합니다. 이런 날은 고요한 세상에 들어앉은 듯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쨍쨍한 뙤약볕, 그 속에서 잠시 달팽이가 된 듯합니다. 매끈한 줄기를 타고 오르는 달팽이에게 길은 수직으로 놓여 있을 겁니다. 그리고 수직 너머에는 파란 하늘이 기다릴 테지요. 느릿하게, 묵묵하게, 길을 내는 달팽이의 모습에서 온몸으로 `살아내'는 뜨거운 힘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