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을 기억하는 방법

역사시선-땅과 사람들

2018-06-24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강민식

 

올해도 어김없이 도로 곳곳에 6·25를 되새기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학계에선 한국전쟁이라 부르는데, 우리는 6·25가 익숙하다. 그런데 하필 전쟁이 발발한 날을 기념하는가. 광복절처럼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8·15를 기억하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반면 역사왜곡이나 독도 문제가 일제의 강제병탄으로부터 비롯하였으니 경술국치 일을 기념할 만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1965년 한일회담 대가로 받은 몇 푼으로 기억을 지웠거나 민족반역행위에 대한 반성과 처벌이 완전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친일 논쟁이 여전하지만, 광복절은 자칫 기억의 단절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아직 휴전상태라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달리 6·25는 지난 시절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댄 강력한 국가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 최근 남북 정상이 만나고 또 휴전 당사국의 정상이 거듭 만남을 가졌으니 한반도의 평화 무드는 한껏 고조된 듯하다. 하여 이제는 종전, 평화협정 기념일을 기다린다.

아무튼, 월초 현충일을 기억하듯 외침에 따른 희생 장병에 대한 추념은 소홀할 수 없다. 이런 기념일엔 충혼탑이 번잡하다. 그런데 대개 충혼탑은 옛 사직단 터에 들어선 곳이 많다. 그런데 그 뿌리가 수상하다. 강제병탄 후 일제는 제일 먼저 사직단을 훼철하였다. 곳에 따라 그곳에 경치를 `완상'하는 공원을 만들기도 하였고, 여지없이 그네들을 위한 추념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토지와 곡식의 신을 제사하던 공간에 그들의 신(神)이나 러일, 청일전쟁 전몰 일본군을 추념하던 공간으로 만들었다. 우리네 역시 그곳에 해방 후 좌우대립과 한국전쟁, 해외파병 등에서 희생한 장병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왜놈들을 추념하던 공간에 나라 위해 죽은 이들을 모시고, 때 되면 몰려와 머리를 조아리느냐”는 순국선열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하긴 왕실의 능원에 공원과 골프장을 만들고 해방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들어선 운동장. 한 켠의 백범과 여러 열사의 무덤은 오히려 초라하다.

또 한 가지. 현충원 높은 곳, 대통령과 장군의 넓고 화려한 묘역과 그 아래 도열하듯 채 한 평도 되지 않는 어깨 맞춰 촘촘한 사병들의 공간은 오늘 아직도 봉건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죽음의 값마저 다르니, 아직도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다. 봉건왕조는 나라 위해 죽은 관료나 의병장을 위해 충신각과 사당을 세웠다. 덧붙여 잘 제사 지내라고 토지와 노비까지 내렸다. 하지만, 수많은 의병은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죽음의 값이 다르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명예와 장원을 지키기 위해 풍차에 돌진하였으나, 국가 단위의 전쟁이 확대되면서 수탈과 억압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백성을 그들의 전쟁에 끌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제 내셔널리즘으로 포장된 대중 동원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농민, 노동자 출신 병사들을 죽음의 장막이 드린 수렁으로 치닫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등 뒤에 그들을 겨눈 총칼도 무섭지만, 발명된 `민족'을 지키려는 의지도 점차 커져갔다. 근대와 함께 다가온 국민 교육, 국사와 국어는 여지없이 선민의식과 배타성을 먹이로 성장한다.

투기자본에 국가권력이 굴복하고 경계를 허물지만, 밖으로부터의 위협은 국가 공동체를 향한다. 그 옛날 인류가 자발적으로 자식을 내보내 무리를 지켰듯이 오늘도 우리의 희생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운명공동체에 살고 있다. 이제 강제와 우연이 아닌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대해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