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세계

낮은자의 목소리

2018-06-21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무각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으며
明鏡亦無臺(명경역무대)
밝은 거울 역시 받침대가 없다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디에 티끌이 낄 것인가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빈 의자 몇 개를 놓아두었는데요.

종교와는 상관없이 산책을 나온 행인이나 신도 분들도 역시 잠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작지만 유익하고도 고마운 공간이 되어주어 감사해지네요.

이번에는 `無門關 弟一則 조주구자(趙州狗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趙州和尙(조주화상)이 因(인) 僧問(승문) 拘子還有佛性也(구자환유불성야) 無(무)니까 州云(주운) 無(무)하다.'

이를 직역하면 조주 선사께 어느 때(因)에 한 학인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자 조주 선사께서 “無”라고 대답했다는 것인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조주선사는 광동성 관음원의 조주종심(778~897) 선사를 말하며 南泉普願(남천보원) 선사의 문하로 젊을 때 두루 행각하고는 80세에 출가하여 120세에 열반하신 禪界의 고봉입니다. `차나 한잔하게(喫茶去)' `趙州無字(조주무자)' 등 禪語錄(선어록)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분입니다.

여기서 無란 바로 불성이 양극단이 아닌 有와 無에도 머물지도 않는 것을 의미하며 만약 불성을 깨치고 있다면 그는 어디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언어와 침묵 그리고 유와 공도 또한 모두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조주구자에서 조주스님은 無로써 대답하고 있는바 이 無야말로 `있다 없다'하는 유무의 대립을 초월한 絶對無(절대무)로서의 無字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에 가면 無無門(무무문)이라하여 없는 것 또한 없다고 이름하는 문도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한국 禪門(선문)의 제1 화두라 일컫는 조주무자의 화두는 바로 개에게는 왜 불성이 없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이 無字라는 격외도리형의 화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첫 관문에서 수많은 선객은 그만 나가떨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면 나중에 나오는 물음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해결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이른바 그 유명한 無字 화두라는 것입니다.

옛 조사들의 공안으로 보는 선의 세계는 생사의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목숨 걸고 정진해 가는 활발하고 걸림이 없는 행복한 세계이기에 동양이나 서양이나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현대에 와서는 서양에서 오히려 명상이나 화두니 하면서 삶에서의 적용을 더욱 실천하고자 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목할 필요가 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에는 역대 선지자 선지식들이 시퍼렇게 지켜온 선의 진수가 아직도 無盡藏(무진장)의 보물로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시간에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에서 무문선사의 評昌(평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