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시간

시간의 문앞에서

2018-06-19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과거라는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분명 모든 것이 흐릿한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지나간 시간에 대해 망각이라는 장치가 있어 극도로 슬펐던 일이나 고통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반대로 좋았거나 행복했던 순간들은 몇 배의 크기로 위장을 해서 사람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살면서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꿋꿋이 버티는 것에는 행복이라는 작은 밀알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힘든 순간들을 덮어 줄 만큼 우거지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요즘 들어 나는 과거로 돌아가 되돌려 놓고 싶은 일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었던 행동과 말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행동들을 기억하지도 일말의 반성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도 않고, 내 아픔의 상처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미안했다는 뒤늦은 엄마의 사과에 아이들은 웃음으로 답을 해 주었으니 말이다.

잊고 싶은 것은 실수를 저지르고 고통을 겪었던 순간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에 행복 했던 순간들이, 현재 자신을 발목 잡는 망령으로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남북평화 정책과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였다고 보인다.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었다. 그동안 보수의 성지이며 보루였던 경상도가 진보의 후보들에게 그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이변이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보편적 가치는 인간을 지배하는 기준점이 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셈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선거에도 네거티브가 만연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격적으로 자질이 안 되는 사람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후보로 나오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방 후보자를 이기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집도 이번 선거기간 동안 모 후보의 과거 사생활에 대해 언쟁을 벌이곤 했다. 이십대 딸아이들은 시류의 흐름이 있어서인지 여자와의 관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거에는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그녀와 선을 긋는 사람은 당선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생활이 문란하고 후안무치인 사람을 지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의 눈을 현혹하려고 선거와는 무관한 자료들을 흔들며 그 사람은 자격이 없으니 자신을 뽑아 달라는 사람도 자격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어차피 그들 모두 서로 이기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이 사실이니 정책공약을 살펴보자고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내 안에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이 듦의 여유일까. 그도 아니면 세상이 두려워서일까.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에 눈만 감으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게스의 반지', 여당의 힘을 업고 당선된 그는 아마도 지금쯤 자신이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 있다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기게스의 반지도, 더불어 진실 된 마음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모래밭에 숨긴 그 진실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다시 자신을 덮어버릴 고통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방법은 있다. 누군가 과거 어딘가에서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보듬어 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은 그에게 잃어버린 시간의 길을 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