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나라’ - 6·13 지방선거 당선자 제위께

수요단상

2018-06-19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문장이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끝내 대구·경북이 실망(?)시키지 않았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을 곳으로 여겨졌던 지역까지 파란 싹이 돋아난 지도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선거는 피할 수 없는 `공유'라고 생각한다. 파란색으로 전국을 뒤덮은 표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호적 지지, 그리고 야당에 대한 혹독한 혐오 등의 굵직한 이슈가 `공유'된 결과다. 이런 선거 결과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지역으로 국민을 나누는 지역주의 정치, 색깔론으로 국민을 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는 끝나게 됐다”며 “(저로써는) 정치에 참여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이룬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받은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두려운 일”이라며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정도의 두려움이 아니라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문장이 떠오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우려와 결이 같다.

6·13선거에서의 당선은 지방자치 본연의 지역 정책이나 후보자의 개인기가 별로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어떤 기초의회 당선자가 토로했듯이, 문재인이 선거를 다해줬고, 문재인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허점은 여기에 있다. 그런 대리전 양상의 선거결과를 두고 혹시라도 자기가 잘나서 이룬 결과로, 시쳇말로 건방을 떨거나 오만해질 경우 유권자의 `공유'는 다가올 총선에서 반드시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가 안간힘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촛불정신과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열망은 무산될 것이고, 그 암흑은 상상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우리 모두에게 드리울 것이다.

이미 SNS에는 개표가 끝나자마자 공식선거운동기간 동안 극진한 공손함으로 허리를 숙였던 이들이 벌써부터 인사를 받으려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는 호들갑이 나타나고 있다. 높고 좋은 자리에 오르면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는 건 지극한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데도 건방지다는 생각을 앞질러 버리게 된다. 더 높은 겸손함과 더 크게 발휘되어야 할 도덕성, 그리고 지방자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바탕으로 하는 유능함이 필요한 까닭이다.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나라와 지방사이의 커다란 벽을 새삼 확인했다. `대통령 팔이'에 너나 나나 가릴 것 없이 골몰하면서도 정작 지방에서의 `나라'는 실종되고 있음을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낸 선거로 평가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물론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위해 물불을 가릴 것 없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후보자의 전술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고장에서 문재인 정부와 그 `나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득주도의 경제 정책은 실종됐고, 그 자리에는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며 개선을 희망하고 있는 성장 중심의 경제가 소위 `일등경제'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강력하게 혹세무민하고 있다.

분배와 소득불균형, 그리고 상대적으로 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지방의 노동환경과 불안정한 일자리, 기업과 고용주의 전횡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역시 찾아 볼 수 없으니, 지방의 건전성이 결집돼 나라의 큰 틀이 완성되는 오름 혹은 내림차순의 순리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지방정치, 즉 생활정치가 실종되고 시민과 피부를 맞닿는 모든 선출직의 세심함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선거는 치명적인 디테일의 결함을 안고 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큰 틀에서의 `나라'를 구할 수 없음을 당선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당선자' 혹은 `당선인'으로 제각각 표현되는 당선사례 현수막처럼 `놈'이 아닌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람'에게 향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을 통해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단속하기 전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창조적인 지방정치 실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의 국민적 `공유'의 뜻은 거기에 있다. `불행할 때 인내하고 행복할 때 긴장하라'는 말은 이럴 때 더욱 잊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