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3

時 論

2018-06-14     반영호 시인
반영호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할 말이 많다. 세기의 회담이라 할 만큼 세계인의 빅뉴스가 되었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북미정상회담. 어젯밤 개최국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으로 한 달 동안의 대장정에 돌입한 러시아 월드컵 축구이야기. 민주주의의 꽃 6.13지방선거, 남북 판문점회담 등 굵직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겹치는 중요한 뉴스들이 라디오와 신문을 끌어안게 하였고 밤이 되면 TV에서 눈을 뜨지 못하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세기의 담판인 북미 정상회담이 일손을 놓게 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합의문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유해송환이다. 첫 숟갈에 배부를 리 있겠느냐마는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아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목표로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일을 의미하는 말인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파괴(Dismantlement)를 의미하는 말의 영문 앞글자를 딴 것으로 CVID와 북한이 주장하는 CVID의 끝자 D를 G로 바꾼 CVIG는 합의문에 들어 있지 않았다. 체제보장이란 북한에서 파괴란 말만 바꾼 Guarantee의 약자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이란 의미이다. CVIG는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CVID의 용어를 본 따서 만든 것이다.
군 복무를 하였던 곳이라 더 그런지 휴전선, DMZ, 판문점, 자유의 다리, 돌아오지 않는 다리 등의 말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분된다.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추억이 있다.
야구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흥분해 있었다. 중대장비 경기로 우승팀에게 쓰리데이 패스가 걸린 경기다. 미군과 한국군(카투사)이 격돌하는 경기로 이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왔었다. 낯엔 근무하고 주로 밤에 연습했다. 우리에겐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게임이다. 비록 열명 중 하나, 즉 십대 일 정도의 비율로 배석되어 숫자상으로는 열세이기는 하나 한국인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몇 달간을 정말로 열심히 준비하고 마지막 경기 전날 밤이다. 그날은 연습은 하지 않고 모여서 전략을 짜기로 했다. 공격 순서를 정하고 수비 위치를 확정했다. 10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는 야구경기이므로 전원이 참여하여야 한다. 예비 선수가 없어 부상 선수라도 나오면 결원된 상태로 진행해야 했다. 물론 감독도 코치도 선수를 겸해야 했고 대타 같은 건 아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 거래지점은 투수였다. 만년투수다. 투구 수가 많던 제구가 잘 안 되던 게임이 끝날 때까지 던져야 했다. 한참 전략을 짜고 있는데 후두두 소리가 나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와! 하며 외쳤다. 비가 오면 연병장이 질게 되어 경기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전략작전 짜던 것을 멈추고 스낵바로 갔다. 거기서 선임 졸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들을 마셔댔다. 긴장감에서 벗어난 안도의 기쁨을 술잔으로 마음껏 누렸다.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야구경기가 있을 광복절이다. 어젯밤 과음으로 다들 침대에서 뒹구는 시간 웬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야구 경기가 있으니 연병장으로 모이라는 기별이 왔다. 비가 내려 연병장이 질퍽거릴 텐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투덜거리며 나갔다. 그런데 아뿔싸 연병장은 뽀송뽀송했고 라인까지 산뜻하게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아침 일찍 들렸던 그 소리. 헬기. 헬리콥터가 질퍽거리는 연병장을 바싹 말려놓았던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우리는 만방으로 깨졌다. 특별휴가는 고사하고 기합만 실컷 받았다. 판문점 도끼 만행이 있기 3일 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