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2018-06-13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지구의 주인이 누구일까? 멀쩡히 잘 있는 지구의 소유권을 말한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인 것을 잘 안다. 소유라는 개념이 상당히 근대적 산물이라는 것도 안다. 재산권(proper ty)이 결국은 인권(humanrigh t)으로 확대되는 것도 안다. 왜? 내 몸이 내 거라는 사고로부터 인간의 권리는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게 달린 것도 내 것이 된다.

이를테면 초야권(初夜權)이라는 것은 내 몸의 결정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영주(領主)에게 있다는 사고다. 그러나 초야권은 중세를 욕하기 위해 날조된 이야기라는 것이 최근의 역사학계에서 밝혀지고 있다. 결혼을 하고도 잠자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중세교회의 폭력은 있었고 이를 피하려고 돈을 냈다는 기록은 있지만, 내 여자의 처녀성을 영주에게 바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중세라고 하더라도, 농노(農奴)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말릴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나저러나 성적 결정권이 여성이 아닌 남자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에서 남녀에게 보편적인 인권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지구로 오자. 위에서 말한 대로 지구의 주인이라는 말이 뭐하지만, 다시 묻는다. 사람이 지구의 주인인가?

이것처럼 오만방자한 생각은 없다. 글쎄 20세기, 두 배로 튀겨서 40세기가량 사람이 지구의 주인 노릇을 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전에도 그랬나? 아니다. 인류 이전에 공룡이 지구의 주인 노릇을 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화석으로만 공룡을 접하지만 그들은 인류 이전 지구에서 화려하게 세월을 보내신 분들이다.

이렇게 보면 동물이 지구의 주인인 것 같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공룡도 육식동물이 있지만, 초식도 있다. 그렇다면 풀이 지구의 주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초식동물은 풀이나 나뭇잎을 먹기 때문이다.

인류가 번성한 것도 밥이나 밀이라는 식물을 먹고살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풀이 없으면 동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더 지구의 주인 노릇을 했었고, 오늘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 식물 없는 동물 없으므로.

사실 종의 다양성이나 진화의 갈래를 보더라도 식물이 엄청난 생물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식물의 번식방법을 보면 정말로 우리 동물을 갖고 논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래전에 종축장을 갔다가 바지에 붙어온 꽃씨를 보면서 이 몸은 풀님의 자손을 모시고 이곳저곳 다니는 하나의 배달자(delivery)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동물인 나는 식물님의 충실한 종복이라는 느낌이었다.

플랑크톤까지 말하면 무엇이 식물인지 동물인지 애매해진다. 그러나 분명히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지만, 옛날 사람들은 식물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영혼의 기준은 숨(psyche)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움직임(anima)으로 로마에서 번역되면서 식물은 영혼을 잃어버렸다.

지구의 주인인 식물님을 존경하자. 밥도 경건하게 먹자.

/충북대학교 철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