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행복을 여는 창

2018-06-10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꼴까”침이 넘어간다. 목구멍은 간질간질하고 재채기가 나오려고 한다. 모처럼 입은 하얀색 와이셔츠와 자주색 나비 넥타이가 목을 조여 불편하게 느껴진다. 조금 넥타이를 헐렁하게 했지만, 마찬가지다. 꽉 쥔 손에는 땀이 배어 나오고 다리도 약간씩 떨린다. 좀 전에 들이켠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하다. 조금 더 마실 것을 그랬나 보다. 슬쩍 옆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긴장이 되는지 연시 입으로 손을 가리고 가벼운 기침을 한다. 함께 서 있는 사람 모두 다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커튼 뒤로 펼쳐질 어둠과 그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숨을 쉬어본다.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통해 뇌로 전해진다. 잠깐 동안 마음이 편안해진다. “막 올라갑니다.” 무대감독의 소리가 들리자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소리가 귀를 때린다. 3개월 동안 연습했던 합창단 공연의 막이 오른 것이다. 박수 소리에 맞춰 새하얀 지휘봉이 힘차게 춤을 춘다. 소프라노의 고운 선율과 테너의 아름다움이 귀를 간지럽힌다. 엘토의 넉넉함은 위로를 주고, 베이스의 낮은 저음은 튼튼한 기둥이 된다. 절정으로 치닫는 연주로 내 뇌에서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이 서로 부딪치며 격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

합창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나의 소리가 아니라 4개의 소리가 어울리고 합창단원 모두의 음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그렇게 달려온 3개월의 연습이 이제 마지막으로 치닫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는 마지막 순간, 목에서 가래가 끓는다. 큰일이다. 이 위기를 잘 넘겨야 하는데 나 하나 때문에 합창을 망칠 수는 없다. 테너파트가 잠시 쉬는 동안 침을 삼킨다. 다행히도 가래가 사그라진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노래에 있는 힘을 다한다. 지휘자의 하얀 지휘봉이 신들린 듯 춤을 춘다. 눈웃음을 보낸다. 마지막 힘을 내라는 뜻이다.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소리를 낸다. 와아~ 관람객들이 모두 일어서고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 나온다. 행복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합창을 통해 깨닫는 순간이다. 그동안 흘린 땀과 연습의 시간을 모두 보상받고도 남는 감격의 순간이다.

우리 삶은 합창의 어울림과 닮았다. 합창이 네 가지 소리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삶도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소프라노는 필수시간, 엘토는 노동시간, 테너는 여가시간, 베이스는 의무시간이다. 합창의 묘미는 4가지 소리의 조화와 균형에 달려 있다. 큰 소리도 작은 소리도 모두 다른 소리와 어우러지는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소프라노만의 솔로도 있고 테너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어느 순간에는 노동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사회적 의무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삶이 이렇게 하나의 영역으로만 채워지면 그것은 매우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며 지루한 노래가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소리가 너무 튀어 전체를 망치게 되는 경우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조화와 균형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합창이 되어 나와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삶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일과 삶이 균형 잡힌 WLB(Work & Life Balance)의 삶이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