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도 모르는 것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2018-05-31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신을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마도 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말일지 모른다. 이 세상은 신이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신이 다스리는 세상은 신이 완전한 것 같이 완전할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세상이 한 가지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서 운행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불변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뉴턴이 운동의 법칙을 발견하자 사람들은 뉴턴이 바로 이 신이 다스리는 세상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확립한 고전물리학은 이 우주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운행되는 체계다. 그래서 뉴턴을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신이 다스리는 우주의 법칙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뿐인 법칙을 뉴턴이 알아버렸으니 앞으로 영원히 뉴턴과 같은 행운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나오면서 뉴턴이 발견한 것이 그 최종의 원리는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상대론과 양자론은 신이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신이 만든 세상에 신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우주 공간에 두 우주선만 있다고 하자. 한 우주선(A)이 다른 우주선(B)을 보니 운동하고 있다. 그래서 A는 자기는 정지해 있고 B가 운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B가 보니 A가 운동하고 있다. 그래서 B는 자기는 정지해 있고 A가 운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실제'로는 누가 운동하는 것이 맞을까? 두 사람이 막무가내로 상대방이 `실제'로 운동한다고 주장하면 누구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제3자인 다른 우주선(C)에서 어느 우주선이 운동하고 있는지 관찰해보면 될 것이다. C가 보니 B가 운동하고 A가 정지해 있었다고 하자. 그러면 B는 C의 판정에 승복할까? 아마도 B는, “C는 공정한 심판자가 아니다. 내가 보니 C도 A와 같이 운동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A가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C는 공정한 심판자가 아니다”고 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심판자를 동원하면 모두가 승복하게 될까?

땅에서는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간단하게 해결된다. 어떤 사람이 기차에 타고서 자기는 가만히 있고 경치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기차가 움직이는 거야!” 하고 간단히 종결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은 땅이라는 절대기준을 모든 사람이 믿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땅이라는 절대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곤란해진다.

상대론은 절대기준이 없다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땅을 절대기준으로 두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당위성을 상실하고 만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절대기준이 없다면 두 우주선에서 어느 우주선이 `실제'로 운동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신일지라도 말이다.

신이라도 알 수 없다고? 그렇다. 신에게 누가 움직이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 신이 정말로 양심적인 신이라면 아마 허허 웃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없는 절대기준을 가정하고 하는 질문이어서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들이 하는 논쟁은 이와 같이 대부분 답이 없는 것들이다.

과학은 답이 있는 문제의 답을 찾고, 사회학이나 문학은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고, 종교는 답을 해서는 안 될 문제의 답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문제에 언제나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답이 여럿인 것도 있고, 답이 없는 것도 있고, 답을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과학, 아니 신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