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세상을 흔들다

수요단상

2018-05-29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대중예술이 종합일간지 1면을 장식한 일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의 보이그룹'이라는 특별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방탄소년단(BTS)이 그 일을 해냈는데, 그건 순전히 미국의 음악차트 빌보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앨범이 1위에 오른 것이 12년 만이라는 화려한 의미가 첨부된, 결국 `결과'가 만들어 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고전문학의 한 장르로 대접받는 고려속요는 언필칭 당시의 가요에 해당한다. <가시리>와 <청산별곡>, <쌍화점>등이 대표되는데, 말 그대로 고려시대 유행가가 세월이 흘러 클래식(고전)이 된 셈이다. 이 밖에도 신라의 향가, 시조, 그리고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민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긴 역사를 줄기차게 노래와 함께했다.

그런 민족적 유전자가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앨범 를 탄생시킨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고 싶다.

이처럼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팔팔하고 싱싱한 아이돌 그룹이다. 그만큼 앞길이 창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나, 새로운 바람이 나타나면 이내 소멸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1959년의 김시스터스, 2009년의 보아, 2012년의 싸이 등의 역사를 들추며 찬양 일색인 BTS의 빌보드 차트 1위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전 세계 대중음악에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빌보드 차트가 인정한 기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보이그룹'이 그걸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는 충분하다.

다만 남북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세계적인 희망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일부 야당과 일본의 아베정권처럼 여전히 대중음악을 폄하하고 차별하는 세력에 대해 경계함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방탄소년단(BTS)은 2013년에 데뷔했다. 불과 5년 만에 세계 정상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소셜미디어와 <아미(Army)>라는 이름의 아이돌 팬덤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거기에 방탄(防彈), 즉 총알을 막아낸다는 그룹 이름의 뜻처럼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분명한 음악성과 가치를 추구하는 저항성이 기저에 있다는 다소 현학적인 가치기준도 만들어내고 있다.

젊은 철학자 이지영은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를 통해 “방탄과 아미의 만남이 만들어낸 폭발성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의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 그리고 그 변화가 더 큰 자유와 해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데 대한 감응과 공명, 이것이야말로 방탄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다”라고 분석한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끼리끼리의 소통과 공감대의 형성, 그리고 돌파구가 별로 보이지 않는 청춘들에 의해 저항과 사회비판에 대한 메시지의 공유, 그리고 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칼군무를 통한 일종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가 됐든, 아이돌에 대한 팬덤문화가 됐든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가져온 소통은 철저한 이미지와 가상의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화려한 영상으로 대체되는 메시지는 진정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부호를 지우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게 보임>과 <정말로 그러함>사이의 구별, 즉 외양과 실체의 구분은 수세기동안 철학자들의 화두였다.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론적 구분이라고 부른다. 진정성 여부는 어떤 진실에 대한 우리 지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앤드류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라는 말이 자꾸 목에 걸린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예전에 광인이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인이 배제되는 까닭은 그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방탄의 세상 흔들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역설이다.

쓸데없이 말이 길었다. 말이 노래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노래를 보지 말고 그냥 들어야겠다. <육포세대>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