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흙수저들에게

김기원의 목요편지

2018-05-16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먼저 가난을 대물림받고 있는 이 땅의 선한 흙수저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 또한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로부터 나고 자라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할까, 당신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허락한 아니 외면하고 있는 하늘을 향해 불경스러운 삿대질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연놈들은 잘난 거 쥐뿔도 없는데도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며 갑질하고 살고, 착하기 그지없는 당신들은 온종일 죽어라 일을 해도 먹고살기 빠듯하고 거기다가 이따금 금수저들의 어처구니없는 갑질에 자존심까지 내동댕이쳐야 하니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연놈이란 상스런 말을 해서.

그래요. 금수저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열등감이 없다고 손사래 쳤으나 본심은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을에 부잣집 한두 곳을 제외하면 다들 거기가 거기였어요. 차이라야 부잣집 아이들은 운동화 신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는. 공부 잘하는 애들과 운동 잘하는 애들 몇을 제외하곤 다들 지역에서 직장 잡아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 놓고 고만고만하게 살았지요.

가난했으나 상대적 박탈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나름 행복하게 살았죠.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집을 사 중산층 반열에 오르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면서. 지금은 어림없지만, 개천에서 가끔 용이 나왔고, 온 동네 사람들이 이를 내일처럼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는, 다시 말해 흙수저가 금수저로 수직상승하는 길이 열려 있었지요.

도회지로 나가 어느 날 갑부가 되어 돌아온 이른바 자수성가형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꽤나 있었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런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걱정입니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상속형 부자는 74.1%, 자수성가형 부자는 25,9%로 전 세계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율인 69.6%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요. 아직도 25.9%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하니까요. 허니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열심히 찾고 일로매진(一路邁進)하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흙수저란 부모로부터 경제적·물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자녀를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금수저와 반대되는 개념이죠. 돈이 돈을 먹는,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유통시키는 사람이 아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돈 될 만한 곳에 투자해서 더 큰돈을 버는. 다시 말해 명목상으로만 유통되는 가상 경제가 실물 경제보다 훨씬 큰 규모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예전에 비해 금융 위기도 자주 일어나고,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금수저들이 활개치는 세상입니다.

금수저들의 삶은 더욱 견고해지고 흙수저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는 악순환의 시대입니다. 이처럼 가지고 있는 자산에 따라 버는 돈이 달라지니 아무리 용을 쓰고 발버둥을 쳐도 흙수저들에게 남는 건 한숨과 지병뿐입니다. 그러므로 흙수저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이는 공부로, 운동하는 이는 운동으로, 기술과 상업에 종사하는 이는 아이디어와 성실로 자신의 가치를 더욱 확장시켜야 합니다.

흙수저들끼리 뭉쳐야 합니다. 아니 뭉쳐야 삽니다. 어떤 불의와 어떤 갑질도 뭉치면, 뭉쳐서 대응하면 막아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자체장도 모두 흙수저들의 손에 의해 결정됨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금수저와 은수저는 소수지만 흙수저는 다수이니 대의로 뭉치면 못할 게 없습니다. 흙수저가 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들이 비상해야 하는, 당신들이 행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