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

기고

2018-05-10     반영호 시인
반영호

 

참으로 오랜만의 출조다. 겨울 동안 창고에서 묵혀두었던 낚시장비를 꺼내어 손질하면서 이제나저제나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린 지 오래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4월이 되어도 냉큼 물러서지 않더니 뒤늦게 찾아온 꽃샘추위가 호되게 매웠다. 해마다 4월 5일 식목일쯤이면 저수지마다 산란이 이루어지건만 새싹이 돋아나고 잎새가 제비 입처럼 벌어지도록 쉬이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어도 봄은 왔다. 예년보다 완연한 봄은 한참 늦기는 하나 결국 찾아왔고 꾼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저수지로 향한다. 나 또한 대박 날 월척의 꿈을 안고 지인이 운영하는 낚시터를 갔다. 낚시터 입구에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란 현수막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두 부부가 철학을 공부하여 평소 유다르다고 생각했는데 현수막 하나에도 역시구나 싶다.

한때 배스나 블루길 황소개구리 등 외래 어종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 중 황소개구리는 덩치가 큰 항우장사로 입에만 맞으면 동족이고 뭐고 가리지 않는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말은 들었지만,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건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일이다. 배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종은 어류만을 공격하는데 양서류가 파충류를 먹는다니 기막힌 일이다.

참개구리가 활동을 시작하는 건 삼월부터다. 동면 기간에는 먹지를 않고 저장해둔 양분만으로 견디다가 깨어난다. 동면에서 깨어날 때는 볼썽사나울 정도로 말라 있다. 이때부터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체력을 보완하고서 짝짓기로 들어간다.

황소개구리는 참개구리보다 산란이 늦다. 일찌감치 산란을 끝낸 수컷 참개구리가 한두 마리 심지어는 세 마리까지 한꺼번에 등에 업혀 짝짓기한다. 공교롭게도 황소개구리가 힘을 쓰지 못하는 시기라서, 먹이를 잡을 수도 없고 결국에는 굶어 죽고 만다. 처음 유입될 때는 위세를 떨치기도 했으나 이제는 참개구리나 두꺼비 등의 토종 생물에 밀려 멸종돼가는 추세다.

이 이야기는 이 낚시터 주인에게 듣고 쓴 필자의 수필 `참개구리 만세'인데 훗날 이 작품이 중봉문학상에 당선된 영광을 얻었다. 알려지지 않은 숨은 철학자로 하여금 좋은 추억을 안겨준 이 낚시터 주인의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란 또 무슨 의미일까. 조용히 놀다 가라는 뜻일까. 아무도 모르게 슬쩍 왔다가라는 말인가.

한동안 현수막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데 조사 한 분이 짐을 꾸려 나오고 있다. 오늘 조황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박이라기에 낚시한 장소를 물어 기쁜 마음으로 그곳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가르쳐준 곳에는 낚시한 흔적이 없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주변 어디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아 다시 쫓아가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손수 물가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그곳 역시 낚시했던 자국이 없었다.

낚시는 특정인만이 즐기는 레저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낚시인구가 700만이라니 놀랍다. 낚시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저수지나 샛강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적어도 내가 가져온 쓰레기만이라도 챙겨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낚시인으로서 부끄럽다.

대박 났다는 낚시장소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려나 보다고 생각했던 내가 머쓱해진다. 자기가 낚시했던 자리를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아니 오신 듯 다녀가소서'…. 기막히게 가슴에 와 닿는 글귀가 아니겠는가. 그날 나는 대박 난 자리임에도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물비린내만 실컷 맡았지만 이름 없는 철학자에게 또 한 수 배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