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화의 발상지 의림지에 박물관이 선다

충북 역사기행

2018-05-09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잣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 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했다. 그런데 이 집주인은 탐욕스럽고 사나웠다.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 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한 삽을 스님에게 퍼 주는 게 아닌가?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멀리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 바가지를 퍼서 스님을 뒤쫓아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용서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칠 텐데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안에서는 시아버지가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줄어들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스님이 하도 딱해 자기가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창고에 가두고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창고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창고의 문이 열렸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창고에서 빠져나와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며느리의 몸이 돌로 변해갔고,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호수가 되고 말았다. 이 호수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 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제천 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다. 고대 저수지 가운데 유일한 관개용 저수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의림지는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또는 `의천'이라 했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명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한다.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해 연못 주위에 돌을 3층으로 쌓아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 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 기둥을 삼았고 돌 바닥에는 박의림 현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의림지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의림지 호수 주변에는 수백 년 세월을 지켜낸 소나무들과 수양버들이 운치를 더하고 있어서 제천 시민 모두가 좋아하는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특히`영호정'과 `경호루'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이곳에 제천시가 `의림지 물결, 역사의 숨결'이라는 슬로건으로 의림지 역사박물관을 개관한다. 162억 원이 투입된 의림지 역사박물관은 의림지를 주제로 한 상설전시실을 비롯해 다목적실, 세미나실 등을 갖춰 역사교육과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남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 동굴 유적인 제천 정말 동굴의 출토 유물도 전시될 예정이다. 아름다운 의림지에서 자연과 역사의 풍성한 만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