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꽃이 피었습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2018-05-08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그때는 봄이었습니다. 엄마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여행길은 막 봄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기운이 쇠할 대로 쇠해진 늙으신 엄마와의 여행이 저는 어쩌면 더는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길을 재촉 했을 겁니다.
 거제로 가는 길은 참 먼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뒷 자석에서 ‘좋다, 좋다’하시며 방그레 웃어 주셨습니다. 두 딸과 함께한 여행이니 좋을 만도 하셨을 테지요. 늦은 저녁에 도착한 우리는 어렵게 민박집을 구해 들어갔습니다. 엄마를 가운데 두고 누운 언니와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운전하느라 고단했던 저는 언니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얼마쯤을 잤을까요. 내 얼굴을 쓰다듬는 따뜻하면서도 거친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오랜 세월 밭일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길이었습니다. 잠든 막내딸의 모습이 그리도 좋으셨는지 쓰다듬고 계셨지요. 그렇게 엄마는 밤새 두 딸이 추울까 이불을 덮어주느라 당신은 잠도 설치셨습니다. 다음 날 유채꽃이 노랗게 핀 근처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때 엄마는 불현듯 생각이 나셨는지 바다 쪽으로 걸어가시더니 손가락으로 바닷물을 찍어 맛을 보셨습니다. 얼굴을 찡그리시며 바닷물이 진짜 짜다며 신기해하셨지요. 저는 그때 엄마가 바다에 처음 와 보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왜 이제 왔을까요? 후회가 되었습니다. 외도의 오르막길을 오르실 때도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못 간다 하시곤 했지요. 그래도 조금만 오르면 꽃이 보인다 하면 엄마는 또 힘을 내시며 걸음을 내딛곤 하셨습니다. 엄마는 그리도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친정집은 꽃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언제나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목련을 비롯해 목단, 작약, 하얀 진달래, 해당화, 죽단화, 장미, 다알리아 등이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곤 했지요. 집 앞 큰 길가에도 엄마는 장에서 꽃 모종을 사다가 심어놓곤 하셨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중에 몇 나무는 제가 우리 집 마당에 옮겨 심어 놨습니다. 하지만, 그리도 탐스럽던 하얀 진달래는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사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생명은 사랑을 먹고 크는 법인데 제 사랑이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을 잘못 들어 진해 시가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몸을 앞으로 숙이시더니 어찌도 저리 꽃이 예쁘냐고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보아도 제 눈에는 이미 꽃이 다 떨어진 벚나무만 있는데 말이죠. 아마도 엄마 눈에는 벚꽃 잎을 싸고 있던 붉은 겉껍질들이 꽃으로 보였나 봅니다. 하긴 엄마의 마음으로 보니 저도 그것이 꽃으로 보이더군요. 벚꽃 구경도 못 시켜 드렸는데, 진 벚꽃이 탐스럽다 하시니 한편으론 죄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좋아하시는 모습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분계선을 서로 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런 일은 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머잖아 남북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의 길을 걷게 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고, 북에 둔 가족과 고향을 언제든 갈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니 가슴이 벅차기만 합니다.
 세상은 온통 꽃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부모와 자식들이 이 꽃길을 따라 함께 걷는 그날도 곧 다가오겠지요. 그런데 저는 참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이 아름다운 꽃길도 엄마와 함께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자식의 마음보다 세월의 속도가 이리도 빠른지 이제사 깨닫는 저는 참 미련한 사람인가 봅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돌아가신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여기는 꽃이 참 많이도 피었다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