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 주의보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2018-05-03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상대론이 일반인의 흥미를 끄는 주된 이유는 아마도 시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같은 물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길이와 크기가 달라진다. 지구와 별까지의 거리는 몇백 광년이 될 수도 있고, 몇억 광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거리는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관찰자가 볼 때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매우 빠르게 달리는 우주선에서 보면 이 길이는 짧아 보인다. 이 짧아지는 정도는 속력에 관계된다.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길이는 짧아진다. 빛의 속력에 접근하면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빛의 속력이 되면 이론적으로는 길이가 영이 된다. 따라서 아무리 먼 거리라도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짧아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천 광년(빛이 가는 데 천 년이 걸리는 거리) 거리에 있는 어떤 별을 생각하자. 지구와 이 별 사이의 거리는 지구에서 보면 천 광년이지만 빨리 달리는 우주선에서 보면 백 광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빨리 달리는 우주선에서 보면 십 광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짧게 보이기 위해서는 우주선이 거의 광속에 육박하는 속력으로 달려야 할 것이다. 인간이 그런 우주선을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지만, 만약 그런 우주선을 만들었다고 하면 천 광년 떨어져 있는 별까지 십 년 만에 아니 더 짧은 시간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십 년이라는 것이 우주선에 탄 사람의 시간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에 있는 사람의 시간으로도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지구 시계로는 천 년도 더 되지만 우주선에 탄 사람에게는 십 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수명을 늘리는 일이 아주 쉬워 보인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대론적인 시간으로 실제 수명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선에 탄 사람이 볼 때 자기의 수명은 변함이 없다.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이 우주인은 천 년도 더 산 것 같지만 그 우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십 년밖에 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빨리 달리는 우주선을 탄다고 해서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주선에 탄 사람의 수명은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백 년도 못된다. 하지만 지구에 있는 사람이 보면 그 우주인이 천 년도 더 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사람에게 천 년도 더 산 것으로 보이면 뭐하나? 자기가 느끼는 시간은 고작 십 년이고, 그동안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양도 고작 십 년 분량이고, 애인과 놀 시간도 십 년에 불과할 것이니 말이다. 우주인에게 시간은 지구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흘러간다.

혹자는 그게 어딘데? 하면서 그렇게 보이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좋아해도 된다. 왜냐하면 지구에 대해서 거의 빛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어떤 별에 있는 인간에게 당신의 수명은 몇 천 년으로 보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먼 별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수명이 몇 천 년으로 보이니까 기분이 좋은가?

상대론적으로 시간이 늘어나거나 길이가 수축된다고 해도 인생이 변하거나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달리는 사람 자신이 보았을 때는 자기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도 세상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관측자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원래 상대론은 이 세상은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그래야 이 세상은 믿을 수 있고 실재하는 확고한 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주여행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하나 귀띔해 주겠다. 먼 별로 여행을 갈 때는 애인을 절대로 지구에 남겨두고 가지는 마라. 지구에 돌아왔을 때 그 애인은 호호백발이 되었거나 무덤 속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여행을 할 때는 See you again(다시 봐), 하며 가볍게 인사하고 떠날 수는 없다. 그대의 십 년은 지구에 있는 사람에게는 몇 천 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주여행에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