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2018-04-26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세상은 참 이상한 세상 같지만, 양자론이나 상대론에서 말하는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이상한 세상이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이상하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냄새를 풍기지만 양자론이나 상대론에서 말하는 이상한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자론적인 세상에 들어가 보자. 한 물체가 동시에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상대론적인 세상에 들어가 보자. 빨리 달리는 물체는 길이가 짧아 보이고, 질량이 증가하고, 시간도 천천히 간다. 얼마나 이상한 세상인가? 하지만 양자론과 상대론에서 말하는 현상이 이상한 것은 그 세상이 정말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 현상이 우리의 일상 경험과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 원자와 같이 아주 작은 입자들의 세상이나 빛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보면 양자론이나 상대론에서 말하는 세상은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이런 세상이 참으로 이상한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내(엘리스)가 보니 시계탑의 시계가 5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손목시계를 보니 6시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옆에 있는 내 친구 뚱보에게 물었더니 자기 손목시계를 보면서 5시라고 했다. 아하, 내 시계가 틀렸구나! 그래서 내 시계를 5시에 맞추었다. 그런데 내 친구 뚱보가 우체국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우체국은 여기서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30킬로미터라고 했다. 빨리 갔다고 오라고 하면서 엘리스는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뚱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몸이 점점 홀쭉해지는 것이 아닌가! 자전거가 더 빨리 달리니 뚱보의 몸이 너무 홀쭉해져서 가는 막대기처럼 보였다. 뚱보가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나 걸렸다. 그래서 왜 이렇게 많이 걸렸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10분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시계탑의 시계를 보니 분명히 1시간이 지났는데 웬 거짓말이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뚱보의 손목시계를 보니 분명히 5시 10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갔다 왔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빨리 간 것이 아니라 우체국까지의 거리가 5킬로미터밖에 안 되어서 그랬단다. “뭐? 5킬로미터라고?” 원래는 30킬로미터인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서 보니 5킬로미터였단다. 그래서 내가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뚱보와는 달리 내 몸은 전혀 홀쭉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길에 있는 모든 사람이 홀쭉해지고 서 있는 건물들도 모두 홀쭉해지는 것이 아닌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거리는 더욱 짧아지고 건물들은 더욱더 홀쭉해진다. 나도 갔다 오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세상이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다. 만약 빛 속도가 시속 10킬로미터 정도라면 말이다. 하지만 빛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다. 자전거 속력이 초속 수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그런 현상을 체험할 수는 없다. 사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도 길이가 짧아지고, 시간이 느리게 간다. 다만 그 정도가 매우 작어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전거로 한 시간 동안 달렸을 때, 짧아지는 시간이 0.000000000000001초라면 당신은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시계가 있을까?

상대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빛의 속력이 우주 모든 속력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립자와 같은 입자들은 거의 광속에 육박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런 소립자들의 세상에서는 위와 같은 현상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학교까지 거리가 얼마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릴 때 학교까지 거리는 얼마인가요?”라고 물어야 한다. 거리가 속력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 무게, 부피 등을 말할 때, 반드시 `속력'을 명시해 주어야 한다. 빨리 달리는 세상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이렇게 고정되어 있는 세상이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다.

세상에 이상한 세상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이 세상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는 이런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은 살아가면서 세뇌된 가짜일 뿐이다. 편견을 벗어야 진실이 보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