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2018-04-18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제주도의 4·3 사건 이야기를 들은 것은 40년에 가까워진다.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몇십 년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심정이지만, 오늘은 역사를 말하는 것이니만큼 `네 다발의 십 년'(4 decades)을 말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어렸을 때 어른들이 `몇십 년 전엡'라고 할 때 나도 싫었다. 감도 안 오고, 옛날 이야기해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미래는 어쩌자는 것인지 물음도 떠오르고. 그래도 기록을 위해서라도 떠드는 것이니 참아주길 바란다.

제70주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이 제주도 4·3 평화공원에서 열렸는데, 대통령이 10여 년 만에 다시 참석했다.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오늘의 대통령이 사과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또다시 마련된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40년 전 4·3은 제주도에서 금기어였다. 있지만 말해서 안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공포심 어린 표정과 마을 사람들의 굳게 닫힌 입이 떠오른다. 뒤로 돌아앉는 이야기, 손사래 치는 이야기가 곧 4.3이었다. 나는 당시 통역으로 따라붙은 제주대 국문과 3학년 학생에게서 4.3을 처음 들었다.

4·3 사건 이후 사라진 마을이 109개, 희생자는 3만이었다. 해안선 5㎣밖에 있는 중산간 마을은 초토화됐다. 3분의 1이 어린이, 여성, 노인이었고, 유족은 5만 9426명에 이른다. 아직도 제주도는 제삿날이 하루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날 토벌,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화산으로 생긴 구덩이는 그들의 장지가 됐다.

그래도 말 못했다. 2000년 1월 제주 4·3 특별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 당한 자는 말 못한다. 무서워서, 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말을 피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기서 가해자가 군경이라면 더욱 조심스럽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경에게 누가 될까 봐,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곧 공산주의자로 비칠까 봐 두렵다.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은 1978년 `창작과비평'가을호에 `순이 삼촌'(함덕 해수욕장 인근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이라는 소설을 통해 4·3을 알렸고, 연이어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를 다른 잡지에도 발표하면서 핍박의 계기를 맞는다. 이 금서는 1994년에야 재출간이 허락되는데, 일곱 살의 기억으로 4·3을 그려낸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그해 함께 출간된다. 근래는 4·3과 관련된 2권 분량의 장편을 쓰고 있다고 했다.

관광단지로 유명한 중문에도 4.3 중문면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오래전 대만 교수와 함께 그곳을 걸을 때 그는 말했다. `기억을 없애지만 말라'고. `보상도 필요 없고, 오직 잊지 않게만 해달라'고. 당시로써는 대만의 2·28 사건이 우리보다 늦게 복권되는 데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제는 총통이 연례적으로 주관하는 행사가 되었다. 타이베이 시내의 공원은 이제 `2·28 평화(和平)공원'으로 명명됐고 기념관도 있다.

`평화'를 주제로 철학자들의 모임을 제주도에서 벌인 적이 있다. 4·3과 관련된 것에는 `평화'라는 말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제주도 사람들이 4·3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 솔직한 화해임을 보여주고 싶은 까닭에서다.

`실패한 과거를 구원하라.'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나는 진보도, 미래도 모른다. 다만 섬광처럼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을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현기영 작가는 보안사로 끌려가 군복 바지에 물똥을 싸도록 얻어맞기 바로 전,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 맹랑함, 이 기억들이란!

/충북대 철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