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화원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2018-04-04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공동생활 중에 작지만 불편한 일이 있다. 남성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성미화원이다.

선진국의 경우, 화장실을 청소할 때‘청소 중’임을 표시하고 이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청소 중일 때, 들어가야 하는지 그러지 않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현대식 건축물이야 아래 위층이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한 층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수고만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 문화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적지 않은 경우, 화장실에 여성이 청소하거나 말거나 남자들은 들어가서 볼일을 본다. 그런데 고민스러운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미화원의 감정이다.

여기서 굳이‘여성미화원의 권익, 미화원의 권리, 여성의 인권’등등 어려운 말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말이 어려워지기보다는 단순히 그분들의 감정이 어떨까를 미루어 생각하면 된다.

어떤 느낌일까? 한마디로 민망스러움일 텐데, 이놈의 민망(憫 )은 면구(面灸)함과 통해서, 부끄러워서 얼굴이 뜨끔거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 느낌은 곧 창피함으로 면괴(面愧)라고도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여성이 남자가 들락날락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따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반박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묻는 것은 ‘화장실 청소라는 직업’에 대한 것이 아니고 ‘화장실 청소할 때 벌어지는 일’, 다시 말해 ‘직업상 감당해야 하는 범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철도의 안전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곧 ‘나의 안전은 뒷전이다’라는 뜻을 갖지는 않는 것과 같이, 철도노동자는 ‘2인 1조로 일하며, 그 가운데 하나는 전후방 감시의 의무가 있다’는 노동원칙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것이 ‘여성미화원은 남성이 용변을 보고 있을지라도 본인의 직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성미화원은 남성화장실을 청소할 때, 남성의 출입을 잠시 동안 중지시킬 수 있다’는 노동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고속도로 화장실이야 많은 사람이 늘 급하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잠깐이라도 막아놓을 방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사려가 깊은 사람은 장차 고속도로 화장실도 두 군데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니면, 여성화장실에는 여성이, 남성화장실에는 남성이 청소하면 된다. 최근 들어 고속도로 남성화장실에는 남성미화원이 상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하나만 맡아도 노동의 양이 모자라지 않으니 굳이 여성미화원더러 양쪽을 다 감당하라고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 회사나 학교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최근 학교의 여성미화원이 이렇게 적힌 노란 팻말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성 환경미화원이 청소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학교 측에서 생각했다면 칭찬이라도 해주려고 물어보았더니, 용역회사에서 해준 거란다. 그 덕분에 놀랄 일이 줄어들었다.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더욱이 내가 당황하며 돌아 나오는 것을 보는 여성미화원의 감정은 어떨지 송구하다.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의 대규모 남자 화장실에도 여성미화원이 상시배치 되어 있던데, 그것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하다(인천공항은 외국인의 민원 때문에 많은 화장실을 몇 년 전부터 남성으로 대치). 사람이 있건 없건 청소를 해야 하는 여성미화원의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있는 남자도 면구하기는 마찬가지다. 미래에는 ‘여성미화원…’이 아니라 그냥 ‘청소 중…’이라는 표지면 족할 날이 와도 좋겠다.

/충북대 철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