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칼럼

나눔이 필요한 사회에서 나눔이 제도화된 사회로

2007-02-22     충청타임즈
이 병 하 <일하는공동체실업극복연대 정책팀장>

일본인 이케다 가요코가 번역 출판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저서를 시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듣거나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자. '마을의 모든 부(富) 가운데 미국사람 6명이 59%를 가졌고, 74명이 39%를 차지하고 있으며, 겨우 2%를 20명이 나눠가졌다. (중략) 또한 20명은 영양실조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너무 먹어 비만이다.'

단순한 빈도와 비율 수치만으로 지구촌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짧은 문장을 천천히 숙고하며 되풀이해 읽으면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강한 충격을 느끼게 된다.

원시공동체 사회로부터 수천년의 역사적 질곡을 거쳐 지금의 시기까지 도착한 인류가 추구해 나갈 장기적 비전과 가치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복지사회'가 인류의 비전과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복지사회는 제대로 된 나눔의 실천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사회다.

지구촌의 생산력과 자본은 이미 사람들이 나누기만 한다면 사는데 충분한 수준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지구촌에서 굶주림과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데 필요한 돈은 1년에 불과 15조원이면 된다고 한다. 지구촌의 현실은 어떠한가. 1년 동안 이보다 75배나 많은 1118조원을 무기개발과 병력 증강, 전쟁놀음 등 생명을 죽이는 일에 낭비되는 안타까운 모습들만 보여진다. 사회는 분명 나눔이 절실히 필요한 사회임과 동시에 나눔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못한 사회다.

자본주의 경쟁 체제하에서 소수의 승리자로 살아남기 위해 바빠서일까 이런 현실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볼 뿐 자기책임과 역할에 대해 눈감고 귀 닫아 왔다. 우리나라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 재단의 활동, 기업의 사회환원, 연말연시 성금 등 자발적 자선, 기부 시스템과 요구들이 일정 몫을 담당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자발성에만 기대 나눔이 제대로 이뤄지는 사회로의 대반전을 바라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 없다. 나눈다는 것.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다.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일 때는 내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때다. 성서에서도 예수의 로기온(Logion)인 산상수훈을 통해 나눔의 의무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눔의 가치들이 단순한 빈말을 넘어 실천력을 담보해 내려면 제도를 통해 나눔가치의 실현기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나눔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개인 탓이 아니라 현 체제를 옹호 및 지지하며 살고 있는 공동책임이라는 인식확산을 위한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이 순간에도 나눔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재정파산, 질병, 정서적 문제 등 다양한 영역의 나눔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이런 필요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혹은 가족에게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책임의 주체를 '개인'에서 '우리'로 바꾸어 보자. 제도의 개혁을 통해 지역사회, 국가, 지구촌이 공동으로 책임을 떠안아야 할 나눔의 의무를 함께 나누는 운동을 시작하자. 병원비를 못내 병든 자식을 죽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는 부모, 학대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돈이 없어 자식에게 버림받아 서러움에 눈을 감지 못하는 어르신, 이런 모습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제대로 된 나눔의 제도를 만드는데 우리의 힘을 보태자.

성장이랍시고 빈부의 격차를 양산하는 것보다 조금 가난하더라도 나누면서 가난을 누릴 줄 아는 그래서 행복한 사회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