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격의 집이다

세상 엿보기

2018-03-25     이영숙<시인>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나치게 뜨거우면 화상 입기 쉽고 지나치게 차가우면 꽁꽁 얼기 쉬운 것이 언어 온도란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언어 온도는 얼마일까?

얼마 전 저학년 건호가 `칭찬 상장'을 만들어 왔다. “선생님은 말을 항상 예쁘게 하고 칭찬도 잘하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 꼭꼭 눌러 쓴 아이의 마음이 심장 박동을 일으킨다.

언어 온도는 거리와도 비례한다. 가까우면 지나치게 올라가서 데이고 멀어지면 내려가서 언다. 서까래 기둥 같은 딱 그만큼의 거리,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보편적인 기준을 교란하는 지나친 겸손 또한 자기 과신 못지않게 위험하다. 각자 사고의 지평만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터라 화자와 청자의 이해 폭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좋든 나쁘든 지나친 것들은 불편을 만드는 요인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거리, 그 사이를 흐르는 적당한 중용의 온도가 필요하다.

나와 한방을 쓰는 짝의 언어 온도는 차가움이 70%를 차지한다. 직장 스트레스가 만만찮은 이유일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보거나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볼 때만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리며 즐거워한다. 서로 하는 일과 취미도 다르다 보니 화제는 가정사로 늘 단조롭고 미지근하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어떨까? 대개 공통분모가 많은 사람으로 교제가 형성되니 비교적 따뜻하게 흐른다. 그러나 때로는 격의 없이 흘러 무의식중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의도와 달리 엉뚱하게 흘러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파장이 비슷한 성향들이니 비교적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직장에서 업무로 맺은 인연에는 대개 포장된 말들이 오간다. 일과 관련한 공적 관계의 인연들이라서 상대방이 전달한 온도만큼 조건부로 흐른다.

얼마 전 수업 중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식으로 꿈 해석과 무의식을 테스트하는 시간이 있었다. 최근에 꾼 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적고 순간 떠오르는 낱말을 서른 개 정도 적도록 하였다. 꿈은 무서운 동물에게 쫓기는 내용이거나 시험에 관한 내용, 무언가에 떨어지는 내용이 많았고, 눈 감고 떠오르는 낱말 적어보기에서는 놀랍게도 70% 정도가 부정적인 낱말을 적었는데 그 중엔 분노와 욕설, 폭력적인 것들이 많았다. 엄친 아, 엄친 딸이라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아이들도 심한 공격성을 띠었다. `노예, 숙제, 안 돼, 하지 마, 싫어, 짜증 나, 미쳐, 됐어'등 차갑고 부정적인 낱말이 많고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욕설도 나열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들이 우수 집단이라는 데 있다.

테스트를 마친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많이 쓰는 언어를 평균 냈는데 따뜻한 언어 30%, 차가운 언어 70% 사용한다고 하였다.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속성은 물론 그가 속한 환경과 사회를 가늠할 수 있다. 한참 자유로워야 할 아이들이 어쩌다 이렇듯 아픈 세상을 사는 것일까? 경쟁을 부추기는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 속에서 부정적 강화와 근시안적으로 훈육 받은 아이들의 가슴이 어떻게 따뜻한 온도로 흐를 수 있단 말인가? 언어는 인격의 집이다. 사랑이 배경인 언어 온도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