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또 같은 시작

미주알 고주알

2018-03-06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이런저런 이유로 소홀했던 봄 맞이 작업을 하려, 아침 일찍 겨울의 긴 잠에서 자리를 털었다. 막상 일어나긴 했지만 거실 창밖 중간까지도 다다르지 못한 정월 대보름달을 넋 놓고 멍하니 바라본다. 벌써 시작을 알리는 봄이 성큼 와 있건만 난 아직도 한겨울의 중간에 있는 것 아닌가?

한 시간여정도가 흘렀을까? 어느새 보름달은 보이지 않고 맞은편 아파트에 햇살이 드리우고 있다. 그리곤 연신 까치가 울어대고, 직박구리 한 쌍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더니, 이내 참새들이 떼 지어 땅을 차고 집단이동을 한다. 소리는 상쾌하여 움츠려 있는 나를 밖으로 유인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맞아주는 공기는 포근했고, 뜰 안 곳곳에 돋아난 상사화의 새순은 맑고도 청초했다. 마당 한편에 있는 우물 뚜껑을 여니 보드라운 수증기가 얼굴을 감싼다. 우물 둘레석으로 쌓아올린 석축에는 이슬이 제법 송골송골 맺어 있다. 조금은 이른 아침인가보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퇴비와 거름을 들고 겨우내 눈비를 맞았던 밭에 흩뿌린다. 거름을 뿌리고 흙 뒤집기를 반복한다. 흙을 뒤집는 반복의 형태는 삽을 지른 자리를 만들어내며 면적을 넓혀간다. 흙을 뒤집으면 바로 새들이 모인다. 그리곤 연신 부리로 흙을 쪼아 댄다. 겨우내 동면했던 벌레들을 쪼으는 것일까?

감나무 밑에도 거름을 뿌렸다. 곳곳이 흙을 헤집고 다시 모은 흔적들이 고양이들의 단골 배변하는 곳임이 틀림없다. 행여나 묻어놓은 똥이 드러날까 거름을 덮어 줄 뿐이다. 그리고 이내 감나무, 영산홍, 목단, 매화나무, 동백나무 순으로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엉켜 있는 커다란 가지를 먼저 톱으로 잘났다. 그리고 햇빛을 받지 못해 죽은 가지는 톡톡 쳐서 제거하고 수직으로 곧게 자란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가지치기를 이어 갔다. 영산홍은 꽃눈이 없는 것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나간다. 봄에 꽃이 진 후에 가지치기해야 하나 너무 성근 가지를 볼 수 없던 나의 욕심 때문에 여지없이 가위질이다. 가지치기는 가능한 죽은 가지와 다른 가지들을 가릴만한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진행된다. 동백나무는 돌아가신 엄마가 무척이나 아끼던 나무였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비닐로 덮어 월동하고 이른 봄 붉디붉은 색의 꽃을 좋아하셨는데, 올해는 어찌나 추웠는지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얼어버린 듯하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 보려 가위 대는 것을 포기한다.

나뭇가지 치는 것은 거름을 주는 것보다 힘들다. 밑거름은 적정량을 주고 부족하다 싶으면 웃거름을 주며 조절하면 되지만, 가지치기는 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잘못 잘라내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는 나뭇가지가 시간의 반복을 통해 성목이 된 터라 하나의 가지가 전체의 수형을 이루기에 선택의 시점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게을리하면 좋은 열매 맺을 가지를 잃게 되고 수형을 망가트리기에 해마다 치러야 하는 행사(?)이다. 어찌 보면 인위적인 행위로 나무의 성장을 조절하는 측면에서 부정적일지 모르나, 시작의 시점에서 가지를 친다는 것은 평생 나무의 수명과 형태를 잡아나가는 것에서 중요한 행위이다.

잡다한 것을 쳐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잠깐의 아픔은 큰 희망을 품기에 거쳐야 함을 알기에 그렇다. 짧은 고통의 감내를 통해 본연의 중심은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진다.

하루하루 일과의 반복이 일생을 만들어 나가기에 진정 중요한 일에 좀 더 전념하고 작은 아픔은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말쑥하게 쳐낸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