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관리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2018-02-07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서원초 교감)

최근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고독부)을 신설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통계에 의하면 75세 영국인 중 절반이 혼자 생활하며 외로움으로 고통을 겪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인 900만명에 이른다.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외로움을 국가가 맞서겠다는 영국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고독사 사망자는 1800여명으로 추정된다. 웬만한 시골 면 단위 인구가 고독사로 사라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외로움 관리'라는 이름으로 각종 소셜미디어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업이 확장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 측면서는 외로움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소위 고독부 장관이 아무리 힘이 세고 예산이 많아도 국가가 외로움을 완벽히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만큼 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외로워지면 방어적이 되고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누구라도 어느 날은 황제가 됐다가 어느 때는 노숙인 심정이 되는 걸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은 운명처럼 반복된다. 열등감에 빠지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우울증은 불면증으로, 불면증은 자살로 몰아가기도 한다. 외로움은 신종전염병으로 사회적 고립감은 조기사망을 부를 수 있다.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의 저자 마이클 해리스는 자발적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중 속에서 벗어나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시간. 이 시간은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움트게 하고, 불안한 정신을 치유해 생산적 정신 상태로 만들어주며,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추억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감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다. 이토록 번잡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자유의 기술은 우리가 잃어버린 `혼자 있음'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주위와 분리될 때 더 크고 더 멀리 있는 것, 이질적인 어떤 것에 연결될 수 있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 solitude)의 사전적 의미는 차이가 없지만 심리철학적으로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외로움은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를, 고독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격리'를 의미한다. 만일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관계의 단절과 소외의 상황이 쓸쓸하고 괴롭다면 당신은 외로운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마주할 때가 행복하고 즐겁다면 당신은 고독한 것이다.

숙련된 고독자는 고독과 정적(靜寂)의 욕망이 끓어오를지라도 군중 속에 있게 되면 잠시 고독자의 습성을 접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고독자는 혼자의 삶에도 대가이지만 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적극적인 관찰자이기도 한 것이다.

국가가 외로움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삶이 곧 외로움이고 그럼에도 우리 모두 살아가야 한다면, 그만큼 외로움을 견디는 힘,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개인에게 필요하다.

시인 정호승은 시 `수선화에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이런 시를 읽으면 더 외로운 기분이 든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갈 힘을,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 외로움이 고독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