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무는 꿈을 꾼다

시간의 문앞에서

2018-01-16     김경순<수필가>

사람의 모습 중에 제일 보기 좋은 모습은 역시 일하는 모습이 아닐까. 자신의 미래를 위해 또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느 모습보다 든든한 것은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친구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차가 들어서자 예외 없이 주유원이 달려왔다. 하지만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젊은이가 아닌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곳을 나오면서도 내내 그분의 모습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 연세에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인가 보다.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아니 어쩌면 그분을 고용한 주인의 마음씀씀이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노인의 날 특집으로 보여줬던 프로가 생각난다.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직원 중에는 연세가 60에서 70대 후반 되시는 분들이 많았다. 노인들을 고용한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곳 관계자는 그 분야의 일은 그분들보다 더 많이 아는 분이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분들의 능력을 우대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아무리 일을 잘하고 몸이 건강해도 정년만 되면 퇴직을 해야 한다. 현 세태와 동떨어진 그곳 책임자의 채용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따뜻해졌었다.

“젊은 나무는 쉬지 않고 자란다.”라는 서울 지하철역에 붙어 있었던 문구가 생각난다. 어찌 자라고 싶은 것이 젊은 나무뿐일까. 또한 푸른 것이 젊은 나무만의 특권이 될 수 있단 말이겠는가. 늙는다는 것은 결코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는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만 하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식량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듦에도 기술이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월을 즐기며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늙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계획을 해보아야겠다.

밖에는 지금 눈이 내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을이 너무도 짧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못내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겨울을 생각지도 못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무지의 소치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남편과 차를 타고 넓은 들판 사이를 달리던 때가 생각이 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놀은 붉다 못해 핏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넋이 나간 내게 남편이 물었다. 왜 저렇게 붉은지 아느냐고. 남편은 노을이 진하면 진할수록 그해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가뭄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늘의 노을빛은 더 선명해진다는 뜻이다. 과일 또한 비를 많이 맞지 않고 태양빛을 많이 받을수록 더 붉고 당도가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내 삶이 폭풍우가 더 많았던 것 같아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핏빛 붉은 노을을 앞에 두고 보니 숙연해진다.

열심히 일하며 맞는 황혼은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은 가만히 안방에 앉아서 효도 받기를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나무가 봄이 되면 꽃이 피길 기다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