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열매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로망

미주알 고주알

2018-01-09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간만에 눈다운 눈이 내립니다. 뭔가 올 듯한 하늘에서 갑자기 떨구는 물을 머금은 솜은 금세 쌓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소낙눈이었나 봅니다.

늦가을부터 떨궈진 낙엽을 거두어낸 자리에 손톱만큼의 싹을 함초롬 덮어주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땅속에 있을법했는데 낙엽 속에서 손톱만큼의 상사화 싹이 삐죽삐죽 나와 있어 얼어 죽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 겨울은 늘 보이지 않는 색을 그리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내 어디에 어떤 수종으로 올 한해를 멋지게 만들어 볼까? 가지가 부러지도록 열매를 달은 나무의 가지는 어떻게 수형을 잡아줄까? 덩굴 식물은 어떻게 유인해서 꽃과 열매를 달게 하고 서로 어울리지 않은 나무들은 제자리를 잡아 적절한 위치로 옮겨 심을 궁리를 하면서 생각 속에서 움직입니다.

밑거름은 어떤 걸로 할지 미리 고민하고 작년에 받아놓았던 소변의 색도 유심히 봅니다. 잘 숙성되어 맑디맑은 소변을 확인하고 살포해줄 녀석들을 적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앞마당의 형태를 바꾸어 나갑니다.

올해는 과감히 담을 없앴습니다. 봄에 없애도 되는데 미리부터 담을 없애고 나지막한 나무로 경계를 두고자 몸이 먼저 움직인 겁니다. 나무담장을 위한 나무로 좀작살나무와 명자나무를 주문해 놓았는데, 대문도 없는 집에 담까지 없애놓으니 지나가던 개도 사람도 어렵지 않게 들어옵니다.

지나가다 들러선 “내가 풍수를 좀 아는데 집은 아늑해야 한다”고 하면서 “높은 담을 쳐야 한다”, “왜 담을 없앴느냐?”, 나중에 나무울타리를 한다고 하니 “나무를 좀 달라”, 집에 “언제 이사 올 거냐?”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하는 바람에 밖에서 일하는데 진도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개는 화단을 파헤쳐 놓지를 않나. 나 원 참…. 이건 좀 아닌 듯한데…. 너무 성급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가정사 이야기도 나누고, 한결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집에 있는 날이면 늘 그러려니 합니다. 높지 않은 담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지만 앞부분의 담을 거두어 내니 생긴 새로운 일들입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연신 집안을 쳐다보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 둘러보고, 눈인사가 늘어나면서 집안으로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겨우내 의자도 몇 개 설치하고, 테이블도 만들어 놓고, 그네도 설치하고, 그 주변으로 멋진 나무들을 심어 정원을 만들 그림을 그립니다. 커다란 화분을 만들고 흙을 채워나가고, 하나하나 주워 모은 돌로 경계를 하는 시간에 하루의 해가 짧게 느껴집니다. 화분에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바람에 가끔 화도 나지만 봄이 되어 나무가 심겨지고 형태를 잡아나갈 생각을 하니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어제는 소낙눈이었는데 오늘의 눈은 무척이나 많아 설원이 되었습니다. 나뭇가지 위로 하얗게 붓질이 되었습니다. 눈이 녹으며 쳐진 가지 끝에 꽃이 피고 열매를 달아 지나가던 어르신들께서 들어와 쉬어도 가고 열매를 따서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분주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