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외딴 마을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2018-01-08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겨울의 한복판, 깊은 산골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기 십상이다.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도 적막감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왕래가 뜸한 깊은 산골인데, 쌓인 눈으로 길마저 끊기고 나면, 눈이 다 녹는 봄철까지는 아마도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눈은 산골 마을을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 외딴 섬으로 만들어 놓는다.

조선(朝鮮)의 시인 유방선(柳方善)은 겨울 한 철을 산골 외딴 섬에서 보낸 일이 있었다.

눈 내린 뒤(雪後)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외딴 마을 섣달 눈이 쌓인 채 안 녹으니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그 누가 사립문을 두드리랴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밤이 되어 홀연히 맑은 향이 전해 오니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매화꽃이 가지 끝에 피었음을 알겠노라


때는 섣달로 겨울의 한복판이다. 시인이 기거하고 있던 외딴 마을에 쌓인 눈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본디 사람 왕래가 적은 터였는데, 눈까지 쌓여 있으니 이 마을을 찾는 발길은 아예 끊겨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이 마을에 있는 시인의 집 사립문을 누가 작심하고 와서 두드린단 말인가?

시인은 외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한 번 세상과 단절했고, 한겨울 눈이 쌓여 세상과 두 번 단절한 것이다.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사람들끼리야 눈이 아무리 쌓여 있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래를 시도하겠지만, 세상 속사(俗事)로부터 멀어진 시인에게 쌓인 눈을 무릅쓰고 찾아올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겨우내 시인의 집 사립문은 두드림 한 번 당하지 못할 것이 빤하다. 그렇다고 시인이 누구라도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도리어 눈이 와서 배가된 속사로부터의 단절감을 즐기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외롭다거나, 찾아올 가망도 없어서 절망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도리어 속사로부터 좀 더 멀어짐에 안도하고 기뻐한다. 그러니 어찌 시인의 외딴 마을 겨울나기가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속사로부터 떨어져 한적하게 사는 것이 즐거움인 시인에게도 반가운 겨울 벗이 있었으니, 밤사이 홀연히 찾아온 매화 향기가 그것이다.

눈으로 갇힌 외딴곳에서 온 겨울을 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요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일 수도 있다. 일부러 도망가지 않아도 속사가 저절로 멀어지는 형국이니, 겨울 외딴 마을은 은자(隱者)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겨울의 진객인 매화가 찾아와 준다면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또 어디 있겠는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