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야 미안해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2017-12-27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물고기에 대한 감정은 문화마다 다양하다.

그리스도인들의 물고기 사랑은 특별하다. 한참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뒤에 붙이고 다니던, 물고기 문양인 익투스(ΙΧΘΥΣ; ιχθυσ; ichthus)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의 첫 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X-mas'로 쓰는 것은 그리스어 `X'가 곧 크리스트(Christ)의 첫 자인 `CH'이기 때문인 것처럼, 앞의 `IX'는 그리스어 예수 크리스트의 첫 글자다.

물고기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라는 신념을 담는 몸통이 되었으니, 그놈 참으로 자랑스러울 것이다.

동양은 더 오래되어 치수(治水) 사업으로 사람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우(禹) 임금을 물고기의 정면 모양으로 표현했다. 고대 청동기에 새겨져 있는 물고기 면상은 신격으로 우뚝 선 우를 뜻하니, 이 역시 물고기 가문의 영광이다. 치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우 임금이 보여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은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그가 물과 놀았다는 것, 물에는 물고기가 산다는 것, 우 임금의 `우'(禹: yu)나 물고기 `어'(魚; yu)나 소리가 비슷하다는 것이 모두 합쳐져 그런 상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측면도이고 다른 하나는 정면도인데, 굳이 비교한다면 물고기를 옆으로 그리기는 쉽지만 정면을 그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끼리 기독교인을 드러내기 위해서 단순화 시킨 것이 기독교의 문양이라면, 우 임금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문양은 좀 더 고급스럽고 복잡해졌다.

그런데 나는 늘 `물고기'한테 미안한 것이 있다.

그들을 인간의 관점에서 그저 고기 곧 `먹을 것'으로만 보는 태도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말은 그들에게 독자적인 어휘를 부여하지 않았다.

영어에서는 `피쉬'(fish)라는 표현이 있고, 중국어에서는 `어'(魚)라는 독립적인 어휘가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물'에 사는 `고기'에 불과하다. 알다시피 고기는 먹을 수 있는 `살'(meat)을 뜻하지 물에 사는 그 생명에게 고유하게 바쳐진 이름이 아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우리말에서 물고기는 음식(food)에 불과하지 제대로 종(種: species)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도 소고기, 닭고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와 닭이 밥상 위에 오를 때 부르는 이름이지 그들이 그들의 공간에 머무를 때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무도 `소고기가 풀을 뜯네'라거나 `닭고기가 모이를 쫀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와 닭은 그냥 고기로만 취급되지 않고 종으로서의 소와 닭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물고기는 그렇지 않다. `고기'를 떼고 `물'만 남을 때, 그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남는 것은 그들이 사는 환경인 `물', 그것이 `바닷물'이건 `민물'이건 `흙탕물'이건 `시냇물'이건 보통명사로의 `물'이지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그들이 아니다.

가끔`생선'(生鮮)이라는 표현도 신선(新鮮)함이 곧 물고기를 가리키게 되어 미안할 때가 있지만, 선 자에는 물고기 어 변이 붙어 있어 조금은 낫다.

닭고기, 참새고기, 꿩고기처럼 조류도 `고기'라는 말을 빼면 고유한 그들이 남는데, 어찌하다 우리말의 물고기는 제 이름을 갖지 못했을까? 소와 닭처럼 물고기도 엄연한 제 이름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물고기'에서 `고기'라는 말을 떼면 물(水)이 남지 그들(魚)이 남지 않는 우리말이 계면쩍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고 싶다. `꽁치', `갈치', `가오리', `가재미'이렇게 말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