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달며

세상엿보기

2017-12-10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온 가족이 씻고 머리를 다듬고 화장하고 옷을 골라 입으며 아이들은 학교로, 어른들은 일터로 갈 준비를 하느라 조용히 부산하다. 이제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스스로 제 준비를 하니, 그동안 살아온 분주함의 평균에 비교하면 지금은 그나마 여유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거의 평생 이렇게 살았던 듯하다.

어느 날 아침, 큰아이가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뭐하니?”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지만 바쁜데 왜 빨리 움직이지 않느냐는 채근이다.

살짝 들어서 보여주는 아이의 두 손에 하얀 교복 셔츠가 들려 있다. 단추를 달고 있었다. 내 맘에 작은 점이 찍히듯 잠시 마음이 멈추었다. 내가 미리 해야 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내 다른 점을 찍는다. 아이 일이다. 아이 옷에 단추가 떨어졌다. 다행히 아이도 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을 듬뿍 묻혀 큰 점 하나를 마음에 천천히 꾹 눌러 찍는다. 고운 빛이 수채화처럼 사방으로 크게 번지며 가슴을 채운다. 단추를 다는 것의 감동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장 지오노의 소설을 프레더릭 벡 감독이 5년 6개월에 걸쳐 2만 여장의 색연필 화로 그려서 만든 30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화자가 여행길에서 만난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는 외떨어진 산에 들어와 홀로 살며 황폐한 땅에 계속 도토리를 심었고 시간이 흐르자 울창한 숲이 생겨난다. 나무가 없는 황폐한 땅에 사는 주민들은 포악하고 불행했지만, 나무가 울창해지자 메말랐던 계곡에 물이 흐르고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오며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풍요로운 자연이 자연과 사람에게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반대로 자연의 한 부분이 황폐해질 때 연달아 환경이 황폐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도 사는 모습도 척박해지는 것을 보며,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사진처럼 뇌리에 뚜렷이 새겨져 두고두고 펼쳐보는 장면이 있다. 화자가 길을 헤매다 엘제아르 부피에를 처음 만나 그를 관찰하고 묘사한 부분이다. 그는 아내와 자식까지 잃은 삶의 여러 가지 슬픔 때문인지 말을 잃은 듯하다. 옷은 낡았지만, 헤진 부분은 잘 기워져 있었고 소매도 깨끗하며, 단추도 꼼꼼하게 달려있었다.

단추는 기본적으로 옷을 여미는 기능을 하는데, 단추가 있어 비로소 옷이 각자의 몸에 맞게 만들어질 수 있었고, 나아가 단추의 소재로서 부와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양한 패션 문화가 생겨난 것도 단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세기 이후에 구슬 모양의 금속 단추를 고리에 끼우는 단추가 등장했는데, 그 모습이 꽃봉오리와 닮았다고 해서 같은 뜻의 프랑스어로 `bouton'이라 부르던 것이 버튼(button)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우리 생활에 단추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꼼꼼히 해서 떨어졌던 단추를 다시 제자리에 고정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엘제아르 부피에를 겹쳐본다. 어떤 예기치 못한 삶의 슬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을 건전하고 검소하게 꿋꿋이 지켜나가는 그런 사람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인류의 아침은 언제부터 이렇게 분주했을까? 바빴던 한해를 돌아보며 뜬금없는 질문 하나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