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에서 역사의 향기에 취하다

충북역사기행

2017-12-06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한국 사람으로 제천 의림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 시간에도 배웠고, 책이나, TV 등 지역의 명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은 접했을 유서 깊은 유적이다.

의림지가 위치한 모산동이 `못 안'이라는 말에서 유래 된 것은 물론 `둑방 제(堤)'자를 쓰는 제천의 지명에서도 그렇고, 도로명이나 학교 이름에서도 `둑방'을 뜻하는 내토(奈吐)나 내제(奈堤), 대제(大堤)와 같은 명칭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둑방'인 의림지는 제천의 상징이며, 자랑스런 곳이 되었다.

의림지는 삼한시대 축조된 저수지로 그 역사가 오래이며, 당시 농업 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같은 시기 축조된 김제의 벽골제와 밀양의 수산제는 현재로서는 저수지로 볼 수 없이 흔적만 남아 있고, 상주의 공검지는 오랜 세월 농토로 개간되어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의림지는 예부터 오늘날까지 풍부한 저수량으로 수리시설 기능을 꾸준히 하고 있는 저수지로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할 수 있겠다.

조선 초에 의림지를 수축한 정인지는 가뭄에도 변함없이 풍부한 수자원으로 농부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의림지의 모습을 한 편의 시로 이렇게 읊었다.



지세는 다시 없이 높고 / 사람이 사는 곳은 벽촌인데

샘물은 밑 없는 동이에서부터 / 펑펑 솟아 못을 이룬다



의림지 입구에 들어서면 노송들이 기이한 경관을 이룬다. 수백 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 높이 솟거나, 휘어지고, 납작하게 땅으로 기는 등 자유로운 모양을 하며 의림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금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올 것만 같은 경호루가 운치를 더하고, 1907년 이강년의 의병 부대가 시국을 논하던 영호정은 의림지에 비치며 더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의림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누각 경호루는 의림지 호수 가에 서 있다. 경호루는 1948년 당시 제천군수 김득련, 서장 김경술에 의해 팔작지붕 누각으로 세워져 단청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의림지 산책로에는 고전부터 현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전시된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곳 경호루에는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의 시 한 편이 장식하고 있어 아름드리 노송 사이의 정자 누각의 풍치를 더하고 있다.

영호정은 조선 순조 7년에 이집경이 건립한 정자로 의림지 전체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남쪽제방의 중간지점에 있어 의림지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다. 이곳을 거쳐 간 사람 중 한 분이 의병장 이강년이다. 일본군에 맞서 천남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강년 의병장이 이곳 영호정 앉아 부하 장수들과 함께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논했다고 한다. 그때가 1907년 정미년, 황제 고종이 일제의 강압으로 퇴위 당하고, 대한 제국이 군대 없는 나라가 된 바로 그 해이다.

농경문화의 발상지 의림지 호수를 산책하며, 영호정 정자에 서서 의림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겨레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병들의 생명이 살아 꿈틀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나라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의림지에서 역사의 향기에 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