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지

사유의 숲

2017-11-20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가을 일요일, 아버지는 제게 벼를 베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낫을 준비하고 새참 거리를 마련해 논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논의 벼는 누렇게 익었는데 벼를 베려고 한 논의 벼는 까맣게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왜 이 논의 벼는 이렇게 다 죽었어요?”하고 여쭈었더니 아버지 말씀이 “늦여름 바쁘다고 며칠 논에 못 나왔더니 열병에 걸려서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를 걱정한답시고 “농사가 우리 7남매를 키우고 가르치는 주요 소득원인데 올 농사가 이렇게 생겨서 어째요?”했더니 아버지는 “별수 있냐! 어쩔 수 없지!”하시며 “내년에는 좀 더 아끼며 살아야지 어쩌겠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자주 하셨던 “어쩔 수 없지” “하는 수 없지.”라는 말은 우리가 살면서 온 힘을 다해보았어도 안 되는 일이나 상황 앞에서 상대방이나 허공을 향해 지쳐서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사람의 힘으로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한두 가지던가요? 살고 죽는 경우도 어쩔 수 없고 아픈 것도 어쩔 수 없고 천재지변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절대자가 행하는 것은 별수 없다 쳐도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결과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안다면 좋겠지요. 특히 선택의 순간을 당했을 경우 비춰 보거나 대조해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인지 큰 인물이라는 분들의 뒤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거나 좋은 친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자기만의 삶의 원칙이 있거나 말입니다. 성공한 인물 삶의 기본 원칙 중 그래도 참고할 만한 것을 들어보자면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거나 전체를 위해 자신의 생을 받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엉뚱한 경우 어떤 사람은 절대자가 하는 일도 도전해서 바꾸어갈 수 있다고 야심 차게 도전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생활은 누구나 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데 누구는 잘되고 누구는 잘 안 되니 안타깝지요.

잘 안 되는 사람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 해결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면 평생 잘되지 않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주 반복되는 일들은 이번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다시 노력을 더 해서 다음번에 더 좋은 결과를 얻으면 되지만 계속 반복 훈련을 해도 잘 안 되는 일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방법을 다 해봐도 안 되는 일은 포기를 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하든지 전체가 힘을 모아 함께하도록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못했으니까 하고 한탄하거나 절망해 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 안 되는 일들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남이 해야 할 일이거나 절대자가 해야 할 일 또는 전체가 합심 합력해서 해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할 사람이 없는 경우 부득불 내가 해보고 또 해보고 해서 될 때까지 하는 일도 있기는 합니다만.

저물어가는 올해도 연초에 `이것은 해봐야지!'했다가 `어쩔 수 없지!'하며 슬그머니 내려놓은 꿈 아니면 계획들 왜 내려놓아야만 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내년에 다시 시도할 때는 실현될 수 있도록 방법을 잘 찾으시기 바라면서 두 손을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