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부터 교육혁명

세상엿보기

2017-10-22     이영숙<시인>

얼마 전 지인의 교육평론집 서평 부탁을 받고 `엄마로부터 교육혁명'제목으로 작품 해설을 마쳤다. 그 이전에 강수돌 교수의『나부터 교육혁명』을 읽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받은 터에 그 연장선에서 만난 교육 평론집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돼지엄마의 추억'은 확고한 교육철학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남아프리카 잠비아 북부 고원지대의 바벰바 부족은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만 가장 고차원적이고 긍정적인 교육을 하는 부족이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생기면 그를 마을 한복판에 세우고 부족 전체가 돌아가며 그의 장점이나 선행들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이 칭찬세례에 죄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마을 사람들은 새사람이 되었다는 인정 하에 축하 잔치를 벌인다. 그야말로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따뜻한 모습이다. 그렇게 칭찬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는 일이 없다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 방법이다.

중국 고대 교육의 목적과 시작은 자아탐구에서 시작하며 행복한 진아(眞我) 찾기에서 비롯한다. 공자의 공부법은 자기주도학습의 기초이다. 지식을 스스로 구성하며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고 비판적 분석을 함양하며 창의융합적 존재로 서는 길의 기초는 자신 탐구로부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평론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돼지엄마의 추억'저자의 고민처럼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공부하는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등학생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대의적인 목적을 제시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육체노동자에서 지식 노동자로 업그레이드하고 시급 만 원에서 백만 원으로 올리며 국산 차에서 고급 외제차로 승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학생은 직장이 바뀌고 배우자급이 바뀌기 때문이라는 다소 현실적인 답을 내놓는다. 공부하는 저마다 목적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이유마저 자본주의적 속성과 맞물려 안타깝다. 자본주의는 때로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들며 신봉하게 하는 여우 같은 속성을 지녔다. 교육의 목적이 표면적으로는 사회가 원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자본을 잘 굴릴 부품 지도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 상실의 교육은 철저히 자아를 타자로 만든다. 여우 가라사대, 자본을 움직이는 최상품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니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공부량만큼 행복지수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는 것이 아닌가. 고급문화와 고급쾌락을 인식할 고차원 수업을 받으면서도 생활 속 무의식은 그 저편을 배회하니 삶과 교육의 괴리가 상당하다.

이제 아이가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육이 되려면 교육의 핵심 동력인 엄마로부터의 교육혁명이 불가피하다. 이제라도 교육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육의 시작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소크라테스식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필자 역시 늘 학생들에게 삶을 부리는 능동적 주체로 살라고 강조한다. 내게 행복한 일이 타자에게도 행복한 일이고 공동체의 유익을 끼치는 일이라면 용기 있게 행동하라고 권면 한다. 각자가 일정한 규칙 안에서 혼자 도는 팽이처럼 돌 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자립(自立)하는 삶, 그것이 공동체가 정의롭고 행복하게 사는 척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