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 … “박 대장님, 왜 혼자 돌아왔습니까”

특별기고

2017-09-24     박연수<충북도지속가능발전협 사무처장>

요즘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은 더없이 파랗다. 파란 하늘은 능선과 어우러져 실루엣을 만들었다. 쾌청한 가을 하늘은 많은 고민을 말끔하게 씻어줬다. 온몸으로 가을을 만끽했지만, 한쪽 가슴은 쓰리고 아프다. 이맘때쯤 나의 가슴은 본능적으로 쓰리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겪었던 어느 가을이 생각나서다. 2009년 9월 25일. 그날도 아침 햇살이 따스했지만 나에게는 `고통'그 자체였다.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했던 그날의 아픔이 파도처럼 덮쳐온다. 얼마 전 사진첩을 열었다. 한 걸음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구름 사이로 히말라야의 신이 된 (故) 박종성, 민준영 두 악우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9월 25일. 생각만으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마의 벽 히운출리 북벽(6,441m). `직지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직지원정대는 정상을 향하던 두 대원과 무선교신이 단절된다. 10여 일간의 헬기와 현장 수색. 끝내 두 악우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했다. 눈물의 카라반이었다. 죄인처럼 살았다. 하루하루 생명줄을 이어갔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버텨내기 위해 밤마다 남몰래 폭음을 했다. 괴로웠다. 직지원정대 대장으로서의 외로움과 무서움은 더 컸다. 동생들 곁으로 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한 줌의 수면제를 입으로 가져갔다. 결국 삼키지 못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벌써 8년 세월이 흘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약'이라고 누군가 얘기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의 말은 내게는 거짓이다. 그 말을 믿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려 봤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가슴이 저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수많은 산악인은 고산등반 도중 동료를 잃고 평생 죄인으로 살아간다. 그 쓰라린 아픔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어쩜 부모·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더 큰지도 모른다. 악마 같은 자들은 알량한 산(山)지식을 포장해 비수를 들이댄다. `뭐가 어쩌고, 이게 어쩌고…“. 그리고 자기가 영웅이 된 양 주변을 돌아다니며 떠들고 다닌다. 아픔이 배가된다.

2014년 가을, 네팔 쿰부 히말라야(에베레스트지역)의 남체(3,400m) 롯지에서 숙박을 하는데 한 산악인이 찾아왔다. “대장님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 왔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사실 제가 준영이 형하고 스팬틱 같이 등반했습니다.

그런데 히운출리에서 형은 놔두고 대장님만 들어와 `왜 혼자 돌아왔습니까?'외쳤습니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상을 엎었습니다. 그 후 촐라체 북벽 등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형일이 형을 잃었어요. 지금 메모리얼(추모비)을 다녀오는 길인데, 대장님 계시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생각이 나더라고요. 얼마나 아팠을까. 겪어 보니 알 것 같아요. 오늘이라도 사죄를 드려 후련하네요” 태양이 산기슭으로 넘어갈 때까지 위스키를 마시며 그 친구와 한참을 울었다.

산악인은 늘 새로움에 도전을 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은 위험이 상존한다. 그 위험을 해결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등반이다.

직지원정대는 정상의 봉우리보다는 과정을 선택했다. 알파인 등반(더욱더 험난하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등반)이다. 직지원정대는 두 대원과 더불어 알파인등반을 약속했고 과정에 충실한 등반을 해왔다. 시련이 있어도 굴하지는 않았다. 두 동생과 약속했던 `과정에 충실하자'는 인생 지표가 되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게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