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드 화살
타임즈 포럼
“응아”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내는 소리다. 엄마에게는 큐피드 화살이 심장에 박히는 소리다. 이날부터 엄마의 눈에 콩깍지가 씌운다. 누워만 있어서 꼼짝도 못하는 꼬물이가 엄마의 하루를 지배한다.
그 녀석을 위하여 수시로 우유를 타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맞추고 혼잣말을 하는 건 예사다. 표정으로 감정까지도 읽어내어 울음으로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불편한지도 알아차려야 하는 게 엄마다. 종일 아기에게 시달려도 귀찮거나 힘들지 않고 3.2kg의 몸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가 않다. 화살의 힘이다.
나는 이 화살이 한 개가 박혔다. 아들이었다. 시간과 더불어 나를 웃게 해주었고 기쁘게 했다. 녀석의 전화 한 통에 잔뜩 찌푸렸던 나의 날씨가 금방 구름이 걷히고 맑아진다. 그 화살은 독성이 강해서 내가 온통 아들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 남들 눈에는 집착으로 보이는가 보다. 나에게 아들 바보라고 우려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아들을 직장일로 세 살부터 유치원에 떼어놓아야 했다. 엄마를 찾으며 온종일 울어 목이 쉰 녀석을 끌어안고 같이 울었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집을 떠나 대학입시 전쟁을 고스란히 혼자 치른 셈이다. 공부와의 씨름을 홀로 겪어내게 해서 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욱신욱신 아프다. 어려서부터 고생시킨 미안함이 내가 그 녀석을 놓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제 아들은 나의 잔소리가 필요 없다. 대학원생 아들은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나에게 자분자분 들려준다.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며 엄살을 피우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 나의 하소연도 들어줄 줄 안다. 친구이자 든든한 조언자이다.
한 설문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부해'란 말이다. 정작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라고 한다. 살갑던 아들도 10대 시절에 안아주려고 하면 “가족끼리 왜 그래요”하고 정색을 하곤 했다. 핸드폰의 할 말끝에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도 무반응, 무응답이었다. 아마 무심했어도 안으로는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던가 보았다. 군대에 면회 간 나를 달려와서 덥석 안아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서서히 중독되어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사춘기 때의 거부과정을 보내고 숙련의 시간을 거쳐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청년이 된 아들에게서 지금은 “저도 사랑해요”라는 답이 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아이들이 퉁퉁거릴지라도 사랑의 화살을 자꾸만 쏘아 보낼 일이다. 어쩌면 그들은 낯을 익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낯익어지면 나무 끝에서 시작된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듯이 마음 전체로 번져갈 것이다.
내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미리 미역국을 끓여서 냉동시켜 보내준다고 해도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아무것도 못해주어 서운한 마음을 다독이는데 “카톡”알림이 울린다.
“내가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부탁해요.
내가 다시 태어나는 그날도 자랑스런 나의 엄마가 돼줘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음악선물이다. 다시 그 화살이 내 심장에 박혔다. 순식간에 독성이 온몸으로 퍼진다. 나는 또 아들 바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