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시 읽는 세상

2015-07-29     연지민 기자

이문재

여름 날은 혁혁하였다

오래된 마음의 자리 마르자
꽃이 벙근다
꽃 속의 꽃들
꽃들 속의 꽃이 피어나자
꽃송이가 열린다
나무 전체가 부풀어 오른다
마음자리에서 마음들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열엿새 달빛으로
저마다 길을 밝히며
마음들이 떠난다
떠난 자리에서 뿌리들이 정돈하고 있다
 
꽃은 빛의 그늘이다
 
※ 여름 장맛비에 마당 한 켠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던 수국이 벙긋 꽃을 피웁니다. 참꽃과 가짜꽃으로 치장한 꽃송이에 여름은 더 여름다워집니다. 꽃이 빚어내는 생명의 소리에 나무도 덩달아 몸을 부풀립니다. 삶이 꽃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고 소멸하듯, 꽃은 빛의 그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