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시 읽는 세상

2015-07-01     연지민 기자

고 영 민

 

볼일을 보려고 
읽던 책을 잠깐 평상에 내려 놓았는데 
휘리릭, 바람이 읽던 책을 반을 읽고 간다 
삼복에 끙끙 오기로 잡고 있던 
왕필본 子 한권을 침도 묻히지 않고 
단숨에 반을 읽어 넘겨 버렸다 


책장 넘기는 것을 서서 지켜본다 휘릭, 휘릭 
더 이상 章이 넘겨지지 않는다 
뻔하다는 걸까 
나무 아래 매미 소리만 無爲하다 
불가슴에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읽던 쪽을 찾아 가만히 책을 엎어놓았다 
한 평 공터, 
널평상 같은 하늘 아래 
수수머리가 간당거린다 
붓자루 같은 미루나무 끝이 논다 
책따위가 무슨 재미랴, 
바람아 

# 이른 여름을 매미가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찌르찌르 숲을 흔들며 7월 더위를 몰고 옵니다. 삼복더위가 찾아오려는지 바람이 먼저 책을 읽고 갑니다. 오기로 읽은 문장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평상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친 조각난 하늘과 살결을 위무하는 바람에 나를 맡겨보는 것도 몸으로 읽는 문장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