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66>

향비(香妃)가 잠들어 있는 카스

2006-11-07     충청타임즈

건륭황제도 香妃의 정절 꺾지 못해…


위구르인들은 그녀의 시체를 성대한 상여에 실어 3년이 걸려 카스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정복자의 손에 끌려갔을 망정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채 정절을 굽히지 않고 고향을 그리며 쓸쓸하게 죽어갔던 그녀의 애틋한 마음이 오늘도 위구르인들의 가슴에 남아 그녀의 이야기가 세세손손 전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향비는 천하를 호령하던 정복자인 황제에게 죽음으로 정절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저항 정신의 상징이요, 영원히 살아있는 민족적 자긍심일 것이다. 그녀의 시신은 아바크 호자 가문의 묘지에 묻혔고, 이곳 사람들은 향비의 묘라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향비의 미모와 매력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를 통해 후세에 전해졌다. 중국 역사상 손꼽는 군주로 평가받는 건륭황제도 연약한 한 위구르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생사여탈의 권세를 가진 황제라도 한 여인의 굳은 절개를 꺾을 수 없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났다는 향기보다는 그녀의 가슴에서 우러난 향기는 천년의 시공을 넘어 그녀의 민족과 자손들에게 자부심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향비의 묘가 없었더라면 카스를 거치지 않고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국경을 넘었을 것이다. 중국 변방 끝인 카스에서 향비의 체향을 맡지 않고는 도저히 중앙아시아로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폭정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춘향이가 있다면 위구르족 처녀들에게는 향비가 있어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회자되고 있다.

향비의 묘 옆으로 늘어선 포플러나무 좌측에는 열대나무 아래 백일홍 같은 꽃들이 화원에 활짝 피어 있다. 화원 옆으로 목조와 벽돌로 쌓은 교경당(敎經堂)이 굳게 철책을 잠그고 빛 바랜 기둥과 홀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교경당 좌측으로 홀 앞 기둥과 바닥에 푸른 양탄자를 깔아 놓고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아담한 사원인 청진사가 있다.

향비묘를 나와 연못가 휴게소 벤치에 앉았다. 담너머 뾰족한 첨탑 기둥을 보면서 그녀를 향해 내 마음속 닫혀 진 정원에서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꺼내 그녀에게 바쳤다. 가슴에 묻혀있던 향수 같은 그리움이 한 떨기 구름처럼 푸른 하늘가를 맴돈다. 세월의 강 밖을 흐르는 그리움 같은 것을 누구나 하나쯤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삭막한 사막 도시 카스에서 아름답고 고결하게 죽어간 이국의 한 여인을 생각하며 폐부 깊숙이 그녀의 체취를 호흡해 본다.

향비여!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핀 장미꽃 같은 여인이여! 그대의 미모와 그대의 총명한 지혜는 신들이 시기하고 질투할 만큼 향기롭고 눈부시기에 인간이 취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황제를 통하여 인간에게 전달하려 왔던 여인이여 동쪽 끝 이방의 한 나그네가 긴 여정에 들러 그대가 남긴 천년 향기를 가슴으로 호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