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

시 읽는 세상

2015-04-08     연지민 기자

문태준

신라의 여승 설요는
꽃 피어 봄마음 이리 설레 환속했다는데

나도 봄날에는
작은 절 풍경에 갇혀 우는 눈먼 물고기 이고 싶더라

쩌렁쩌렁 해빙하는 저수지처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어도
봄밤에는 숨죽이듯 갇혀 울고 싶더라

먼발치서 한 사람을 공양하는
무정한 불목하니로 살아도
봄날에는 사랑이 살짝 들키기도 해서
절마당에 핀 동백처럼 붉은 뺨이고 싶더라.
 
※ 사방천지가 꽃잔치인데 왜 봄이 슬플까, 하고 누군가 묻더군요. 세상이 너무 환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보이는 모두가 너무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얼버무렸습니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슬픔의 기저에는 단단한 대지를 뚫고 터져 나오는 가녀린 봄의 절규, 그 꽃빛 때문이지 않을까요. 환속도 울음도 다 수긍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봄이니까요.